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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17. 2019

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 진창 같은 사랑.

진창 같은 사랑이 감정적 허기를 찌르다





진창 같은 사랑이 감정적 허기를 찌르다




감정적 허기에도 어떤 모양이랄게 있다면, 일탈이라는 관능적 칼날이 그것을 찔러 깨지고 파열된 조각들이 내 허기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겉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내 마음을 헤집고 떠난 작품.



그런 사랑이 위대하다고, 세상이 멸망하는 날에는 그런 사랑만이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에게는 한낱 알량한 놀음일 뿐이지만, 나와 당신에게는 그것이 전부이고 너무나 벅차서 그 끝과 끝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랑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이 두 발과 두 다리가 엉겨붙는 진창 속에서도 손을 뻗어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어디에도 이 이상의 구원이 없다면 나는 네 손을 붙잡고 기꺼이 진창으로 걸어들어가겠다는, 떠올리기만 해도 진력나는 그런 사랑을 믿었다. 우리 존재를 증명할 최후의 증언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그 사랑에, 가진 전부를 걸고야 마는 희대의 노름꾼이 내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풍파는 오랜 시간을 들여, 내 날것 같은 사랑의 단상을 다듬었다. 그 충만했던 사랑의 단상은 풍화되고 마모되어 깎여나간 끝에 현실이라는 거친 알맹이만 오롯이 남았다. 나는 이제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현실적인 세상에 어울리는 현실적인 조건을 찾아 현실적인 연을 맺을 일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었다. 한 길 속도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올인하는, 도박 같은 사랑은 이 즈음의 현실에는 걸맞지 않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고 진창 같은 사랑을 찾아 떠난다 한들, 세상은 그런 내 사랑의 증인이 되어주는 대신 엄중한 판사가 되어 나를 심판할 것이라는 확신만이 남았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진창 속에서도 서로를 갈구하는 그런 사랑을 한낱 알량한 놀음으로 치부하는 타인이 되었다.



단조롭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 망연히 시선을 두고 있던 어느 틈에 울컥했던 건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의 끝에서 끝까지, 내가 닿을 수 없는 지점들이 가득했다. 치밀어오르는 허기는 슬픔이 되어 마음 속에서 낙엽처럼 흩날렸다. 나는 한여름 쨍한 햇볕 아래 홀로 가을이었다. 괴로운 마음이 더 이를 데 없이 사무쳤다.












「나, 그들을 만나 불행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


- 신경숙, <깊은 슬픔> 5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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