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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17. 2019

영화 <조 Zoe>,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

'사람이 할 수 없는 방식'과 '사람의 방식' 사이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방식'과 '사람의 방식' 사이에서.







0.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래서 결국은 닿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종種의 사랑은 그 개체적 유형과 특성에 보이지 않는 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하도록 설계된 로봇과 '사람의 방식'으로 사랑하도록 태어난 사람의 미래가 과연 동반자적 결말을 낳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0.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서 나올 때면, 많은 경우에 엔딩 그 후를 생각한다. <조>처럼 내가 짐작했던 결말보다 다소 김이 빠지는 끝을 맞을 경우엔 더 그렇다. 엉망이 된 일상과 망가진 감정이라는 위기를 넘기고 '조'와 '콜'이 재회했을 때, 부스러기로 남은 감정의 짧은 교환만으로 그간 괴로워했던 종種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리는 일이 어째서 가능했는지 그 감정의 작동원리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마 이 서사를 응원하는 각본가와 나의 차이는, 사랑의 힘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한계치의 설정일 것이다.



0. '조'와 '콜'은 결국 감정의 한 물결에 다시 올라탔지만, 당장은 그 사실이 너무나 가슴 벅차고 마음에 충만해서 서로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겠지만, 감정의 거품이 서서히 가라앉고 조금씩 현실이 '두 사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위기는 다시 반복되고야 말 것이다. 사람이란, 한 번 알고 나면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므로. 다시 어느 순간이 오면 '콜'은 로봇으로서의 '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야 말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파국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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