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제목의 적절한 현지화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영화 <렛 힘 고 LET HIM GO>
감독 토마스 베주차
출연 케빈 코스트너, 다이안 레인 외
개봉 2020. 11. 05.
"그게 삶이라는 거야, 마거릿.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잃어버린 것들의, 그리고 잃어버릴 것들의 목록에 대한 담담하고도 슬픈 드라마.
광활한 배경을 가진 덕에 나올 수 있는 서사. <렛 힘 고>를 비롯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스트 인 더스트> 같은 작품들도, 며칠을 꼬박 달려도 끝과 끝에 닿을까 말까 싶은 광대한 배경을 등에 업고 나온 작품들이다. 창의적 발상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한 뼘 땅에 불과한 배경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한국 영화가 그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했던 작품.
그나저나 제목 정말 환장하겠다. 수입사든 홍보사든 다들 너무 당연하게 원음 그대로 차용한 제목을 내놓고, 관객의 이해는 나 몰라라 하는 행태 너무하지 않나. 무조건 한국어를 우선하자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관객들이 제목을 보고 해당 작품의 분위기 정도는, 작품의 인상 정도는 파악하고 떠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테슬라> <테넷> <호텔 뭄바이> 같은 작품은 그 자체로 작품의 인상을 드러내는 제목이니 패스. <태양의 소녀들> <교실 안의 야크>처럼 단순한 번역도 충분히 작품을 대표할 수 있는 제목이고. <비밀 정보원 : 인 더 프리즌> <버즈 오브 프레이 : 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세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원음을 내세우긴 했지만, 부제를 달아 그 한계를 커버하고 있고.
그런데 <언힌지드> <라스트 풀 메저>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영어권 국가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도 열몇 시간이나 날아가야 하는, 영어권이 아닌 국가의 대중 극장에 걸리는 영화치고는 너무 배려 없는 제목들 아닌가. 그중 이 <렛 힘 고>는 정말 화룡점정 같다.
젊은 세대도 영어가 잘 안되는 사람도 많고(일단 저요...), 젊은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에 약한 중노년 세대도(편견이라면 죄송) 극장을 문턱없이 찾는 시대에, 대충 볼 사람은 보고 모르면 말고 포스터 그림을 보고 관람을 결정하던가 말던가 마음대로 하라는 이야기인가 싶다. 얼마간의 관객에 일희일비하는 극장가에서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제목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도 없는 건, 바람직한 행태는 아닐 뿐더러 더 나아가 관객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고, 더 솔직하게는 티켓을 팔고 싶어 극장에 걸 작정을 했다면 적어도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