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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30. 2020

영화 <태양의 소녀들>, 포로와 성 노예의 절망에서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여성들의 투쟁






영화 <태양의 소녀들>
감독 에바 허슨
출연 골쉬프테 파라하니 외
개봉 2020. 10. 22.






이라크의 쿠르드 계열 소수민족 야지디족은 2014년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IS의 습격으로 평범한 삶을 파괴당한다. 모든 성인 남성은 그 자리에서 사살 당하고, 남자아이들은 전투원으로 키워질 전투 학교로 보내졌으며, 성인 여성과 여자아이들은 포로로 잡혔다.


포로로 감금된 것도 잠시, 곧 그들은 IS 단원들에게 노예로 팔려가 강간과 고문을 당하게 된다. 낮엔 강제 노동을 하고, 밤에는 강간을 당해야 했던 여성들. 그렇게 잡혀간 여성들의 수는 어느 하룻밤만 해도 7,000명에 이르렀고 가장 '비싸게 잘 팔리는' 건 9~10살의 소녀였다고 한다.


내게는 올해로 꼭 9살인 조카가 있다. 투니버스 채널에서 틀어주는 만화의 장면 하나에 까르르 넘어가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웃음을 짓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돈푼에 팔려가 성 학대와 고문을 당하는 땅이 세상 저 편 어딘가에 있다고 한다. 쓰면서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바하르는 그 절망 속에서 살아남았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같이 성 노예로 팔려갔던 동생마저 잃은 그녀는 가까스로 지옥에서 탈출한 후 다시 지옥 같은 삶을 선택했다. 살아남은 야지디족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여성 전투 부대의 대장이 되어 IS와 맞서 싸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변호사였던 그녀는 이제 펜 대신 총을 든다. 밤낮으로 헤아리는 건 법리보다 전투 전략이다. 여성과 생명, 자유를 위해 총을 든 그녀는, '그들이 죽인 것은 우리의 두려움이다'라고 외치며 전투에 뛰어든다. 여자의 손에 죽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생각하는 그 잘난 IS 전투원의 시체에 대고 일갈하는 그녀의 얼굴에선 숨겨진 깊은 슬픔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작전에 나서며 자유를 탈환할 날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다시 비장함이 읽힌다. 이 세상에서 묘사할 수 있는 줄글로는 그 참혹함을 모두 담을 수 없는 고통을 마음에 담고 적진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딛는 바하르. 가련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강인한 그녀의 삶이 언젠간 안식을 얻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중에, 고난 중에 있을 수많은 '바하르'들을 위해 대체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안락한 나의 상상력은 너무도 부족하다. 마음의 무거움을 어디에도 비할 바 없다. 그저. 부디. 한 인간이 그렇게까지 살아남아 견디고 버텨야만 하는 당위를, 그녀가 언젠가 닿을 투쟁의 끝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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