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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21. 2020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내 마음의 빈 공간은

오직 나의 능동으로 채울 수 있음을.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케이트 블란쳇 외
개봉 2020. 10. 08.






늘 '선입견에 가로막히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양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책 표지다. 나는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한눈에 드러나는) 책 표지를 볼 때부터, 그 책을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때가 꽤 있다. 파스텔톤으로 말랑말랑 깜찍발랄 하다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일러스트가 들어간 표지들은 일단 첫인상에서 걸러진다.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다. 묵직하고 우직한 서사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 표지에서는 그런 내용을 기대할 수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어디 갔어, 버나뎃>이라는 소설도 그런 선상에서 걸러진 책이었다. 한때 그런 류의 표지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부터 SF 서적을 주로 내는 출판사 '아작'의 책들까지 말랑하고 발랄한 표지들이 소설 매대를 가득 차지했고, 나는 그 책들을 모두 걸렀다. 그 유행 같지 않은 유행이 정말 싫었다. 그 와중에 SF는 포기할 수 없어서 아작의 책 한 권은 읽었지만, 그마저도 밖에서 표지를 내보이기 싫어 집에서만 읽었다.



쓸데없는 고집이란 걸 안다. (썩 믿고 싶지 않지만) 분명 그렇게 넘긴 책들 중에 마음에 꼭 들 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세상에 다른 좋은 책은 많아!' 하는 생각으로 그 표지들을 미뤄두었는데 뜻밖의 옆집 장르, 영화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줄이야.



표지로 걸렀던 책이 영화화되어 이쪽으로 건너오니 꽤 그럴듯해 보여서, 그것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창작자들이 보면 좋을 영화'라는 멘트에 힘입어 보게 된 <어디 갔어, 버나뎃>은 그 선입견을 뻥 차 주었다. 선입견은 가루가 되어 우주로 날아갔다. 







유망한 건축가였던 버나뎃은 모종의 이유로 작업을 그만둔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음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예술가이며 건축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버나뎃의 손과 발은 그저 여기, 지금 이곳에 머무르려고만 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자유롭고 호쾌한 예술의 정신을 담고 있으니 괴리가 생길 수밖에. 배우자와 가정을 이루고 딸을 보살피는 일상은 그녀의 요동치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영화는 버나뎃이 그 괴리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린다. 그를 사랑하는 가족의 애정과 이해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결국 스스로 발견해야만 하는 내 몫이 있다는 사실을 연약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마음으로 깨우친다. 때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에게는 각자 마음속의 커다란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채우는 일에는 오직 나의 능동과 깨달음이 필요하다는걸.



우리는 누구나 그 방법을 모르고 산다. 하지만 버나뎃이 그랬듯 처음부터 삶의 모든 사용설명서를 촘촘히 읽고 생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극 중에서 엘진이 말했듯 '진실은 복잡하다'. 내가 진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기까지 그 과정의 복잡함과 지난함이야 말해 무엇할까. 몇 십 년을 살고서도 '내 삶'에서 '진짜 나'는 무엇이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은걸.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테다. 손발과 마음이 맞지 않는 삶을 살면서, 영영 눈 감기 직전까지도 도대체 나는 무엇이었을까 자문하고 자책할 것만 같다. 그런 미래를 예상하면서도 <어디 갔어, 버나뎃>과 같은 작품을 보면 왠지 힘이 난다. 그가 겪었던 그 기분 좋은 모험의 가능성이 어쩌면 나에게도 열려있는 것만 같아서. 그 설렘을 디딤돌 삼아 한 발을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역시 표지만 보고 알맹이를 거르는 일은 바람직하지는 않은 일이다. 아무래도 '메르타 할머니'의 이야기도 읽어야 하나 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마음에 남는 건 역시 아주 사소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건, 그의 작은 습관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천장에서 새는 물을 받는 양동이에, 물 떨어지는 소리 나지 말라고 넣어두었던 천 조각. 그것만으로도 엘진은 버나뎃을 알아본다. 그런 사소한 눈치야말로 세상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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