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의 깊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연 Dec 23. 2020

책 <배움의 발견>, 의지로 이루어 낸 배움의 길

그 경이로운 경험에 대하여.





<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열린책들
2020년 01월






500여 쪽의 책을 다 넘기고 나면, 표지가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깎아놓은 연필의 굴곡과 산-벅스피크-의 굴곡이 겹쳐지는 그 지점에 타라 웨스트오버의 삶이 있었다.





모르몬교의 독실하고도 충성적인 신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가득했던, 정규 교육은커녕 제대로 된 홈스쿨링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던 타라 웨스트오버의 유년기. 그의 아버지는 밀레니엄 시대의 도래와 함께 세상은 멸망할 것이라는 믿음에 취한 사람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을 연료와 식량과 총기를 비축하는데 투입하며 Y2K의 공포에 떨었고, 공교육과 공적 의료 체계는 모두 시민을 지배하려는 정부의 음모라고 믿었다.



타라를 비롯한 예닐곱의 식구들은 모두 자신의 몸보다 신앙을, 안전보다 노동을 우선하는 가풍 속에서 오로지 산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가꾸는 일로만 살아야 했다. 창고 꼭대기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져도, 폐철 처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부상이나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화상을 입어도 집에서 앓아야만 했다.



가족의 막내였던 타라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은 열다섯 살 무렵이었다. 배움을 위해 가족 중 처음으로 집을 등졌던 오빠, 타일러가 손을 내밀었다. 네가 경험해야 할 세상은 바깥에 있다는 설득은 타라를 움직였고, 그는 고민 끝에 결심하고 행동한다.



타일러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반대하는, 대학에 갔다간 타락하고 말 거라는 그들의 말에도 타라는 뚝심으로 나아갔다. 공교육은커녕 홈스쿨링도 받지 않았던 그가 독학 끝에 대입 자격시험에 응시하고 한 대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경이로운 일들의 시작일 뿐이었다. 교과서를 어떻게 읽고 공부해야 하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던, 수중에 몇 푼이 없어 등록금이 아닌 당장의 생활비가 걱정이었던 그가 지역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를 거쳐 하버드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의 여정은 굴곡 그 자체였다.



몇 번이고 의지와 꿈이 꺾일 위기가 있었음에도, 사람들의 편견과 한계를 이겨내고 비로소 꿈을 이룬 타라 웨스트오버. 산속에서 폐철을 분류하고 창고를 짓는 일에만 묻혀 있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지적 희열 속에서 그는 <역사는 누가 쓰는가?>라는 질문에 마침내, 굳은 확신을 담아 답한다. <바로 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부엌에서 오일 블렌딩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갔다. 「브리검 영 대학교에 안 가기로 결심했어요.」 내가 말했다.

엄마가 고개를 들고, 내 뒤쪽에 있는 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속삭였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런 소린 듣고 싶지가 않구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도 내가 주님의 뜻에 따르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마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엄마의 시선에 실린 힘은 몇 년만에 느껴 보는 것이었다. 정신이 아뜩해졌다. 「엄마가 낳은 모든 자식 중에서,」 엄마가 말했다. 「제일 먼저 집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떠날 아이는 너라고 생각했었다. 타일러가 그럴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었지. 하지만 너는 아니야. 여기 있지 마. 가거라. 아무것도 네가 떠나는 것을 방해하도록 두지 마라.」

(215쪽)




나는 역사 기록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물쭈물 꺼냈다.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홀로코스트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 배우면서 내게 근거나 기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고 절감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누군가가 과거에 대해 아는 바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제한받게 될 거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바로잡히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잘못 알고 있던 규모가 너무도 커서 그것을 바로잡으면 세상 전체가 변할 정도였다.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는 알아야만 했다. 나는 그들의 저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관적 편견이 가미된 주장들을 서로 교환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내가 배운 역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운 역사와 다르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도 틀릴 수 있고, 칼라일이나 매콜리, 트리벨리언 같은 위대한 역사학자들도 틀릴 수 있다. 그들이 논쟁의 불을 지핀 후 남은 재로부터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발을 디딘 땅이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거기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373쪽)




나는 주저하면서 천천히 자판을 쳐 내려갔다. <엄마가 저한테 대학에 가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하세요? 숀 오빠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라고 하면서?>

<응, 기억해.>

잠깐 멈췄다가 엄마의 글이 스크린에 더 올라왔다. 내가 꼭 들어야만 했던 말인 줄도 몰랐던 말들이었지만, 일단 읽고 나니 그것은 내가 평생 찾고 있던 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내 딸인데, 내가 너를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한평생을 다시 살았다. 그것은 실제 내가 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나는 다른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됐다. 나는 마술 같은 그 말의 힘을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엄마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내게 되어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

<사랑해요>라고 쓴 다음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422-423쪽)




(전략)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506-507쪽)





매거진의 이전글 책 <제7일>, 이승의 슬픔과 안식의 경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