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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Dec 05. 2020

책 <제7일>, 이승의 슬픔과 안식의 경계에서.





<제7일>
위화
푸른숲
2013년 8월






양페이는 죽었다. 화장이 되고 묘지에 묻힘으로써 안식을 얻어야 마땅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그는 가난하고, 거두어 줄 가족이 없어서다. 유골함과 묏자리가 없는 양페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떠돈다.



그 정처 없는 길 위에서 양페이는 기억에 새겨진 생전의 흔적들을 마주한다. 그리운 아버지 양진뱌오, 전 아내 리칭, 어머니 대신 제게 젖을 물렸던 리웨전, 옆 단칸방에 살던 류메이와 우차오. 그 기억들로 인해 삶을 스쳐간 희노애락에 다시 마음을 적시는 그다. 그리고, 지나간 사사로운 인연들 틈에 문득문득 고개를 내미는 이들이 또 있다.



바로 국가라는 허울 좋은 시스템의 그늘에서 억울하게, 혹은 영문도 모르게 죽어간 이들이다. 작가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고, 사회구조적인 부조리를 조장하는 동시에 외면하는지를 양페이의 이야기들 틈에 녹여낸다. 저자 위화가 <허삼관 매혈기>, <인생> 등의 작품을 통해 드러냈던 주제 의식들은 <제7일>에서도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억울하지만 오열은 없고 분노하지만 담담한 서술 속에서 돋보이는 건, 그 그늘 아래서도 손끝과 발끝이라도 간신히 양지에 걸친 채 어떻게든 삶을 살아나가려 애쓴 이들의 인생이다. 덧없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어떻게든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이 흘러가고 마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켜내고 누군가를 사랑한 이들의 삶을 보노라면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존재하는 모든 삶의 고단한 일면을 바라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감정에 관한 한 나는 문과 창문이 꼭 닫힌 집처럼 답답하고 둔했다. 사람이 문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를 분명히 들으면서도 그게 지나가는 행인의 발걸음, 다른 사람을 향한 발걸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발걸음이 멈춘 다음 현관의 벨을 눌렀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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