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의 깊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연 Nov 19. 2020

책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거야>, 취향을 쌓아올려

나의 세계를 건사하는 일에 대하여.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 그것이 덕질의 즐거움!
정지혜
2020년 03월
휴머니스트






'사적인 서점'의 대표인 저자는 일과 사람에 지쳐 번아웃을 자각할 즈음 '덕질'에 입문한다. 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점 일은 녹록지 않았다. 서가를 채우고 책을 파는 일에 더해, 단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을 진행하고 청탁 받은 원고를 쓰고, 그 일들을 위해 틈틈이 책을 읽고 메모를 하며 일의 자원을 마련해야 했다. 일은 점점 일상의 경계를 침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그를 놓아둔 곳은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였다.


생기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이들이 온 힘을 다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그를 사로잡았다. '입덕'은 마치 이 우주가 그를 위해 예비해(?) 두었던 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간 나온 앨범들과 비디오 클립을 차근차근 정복(!)하며 방탄소년단을 알아갔다.


단순히 알아가는 것뿐 아니라 그는 덕질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한 발 나아가고, 새로운 마음을 먹고, 새로운 다짐과 결심으로 삶을 꾸려가기 시작한다.


방탄소년단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명 '성지순례'를 위해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고, 되새길 만한 멤버들의 말을 곱씹으며 세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덕톡'을 하며 같은 것을 좋아하는 마음들이 모여 어떤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체감한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저자의 마음은 순정 그 자체다. 세상 모든 예쁜 말들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 기록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애정으로 더 단단해진 중심으로 좋아하는 일들을 꾸려가는 과정을 보고 나니 공감이 되기도,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덕질'이라는 건, 부모님 자식 배우자 애인 친구와 나누는 애정의 영역과는 분명 다른 성질을 갖고 있고, 그 오묘한 특질이란 정말이지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함이 피어오르는 영역이다. 여기에 세간의 편견 어린 시선이 더해지면 정말이지, 어디 가서 '덕질'의 'ㄷ'도 함부로 꺼내기 어렵다.


그 와중에 만난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는, 온갖 덕질의 현장에서 많은 덕과 '수니'들을 만났던 故 박지선 님이 생전 하셨다던 말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여러분들은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 힘쓰지 않고 좋아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그거 진짜 멋지고 좋은 일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힘쓰며 그걸 토대로 나의 취향을 만들고, 그 취향으로 일상의 기쁨을 길어 올리는 일. 그 마음이 정말 나를, 우리를 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머글'은 영영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겠지만. 하하.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를 읽으면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다음 책을 읽고 싶어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어서. 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힘을 내어 하루를 살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인생을 만들어가니까요.

(22쪽)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생의 한 장면이 전개될 때마다 사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장면에 전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나의 세계'는 '나라는 인간의 경험치'로 구성됩니다. 내가 손을 뻗은 만큼, 발을 내디딘 만큼이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전부이지요. 이번 여행으로 스스로 그어두었던 한계선이 보다 넓어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내가 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도 커진 거겠지요.

(48쪽)




지금의 세상은 헤매지 않도록, 틀리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도 앱이 있으면 처음 가는 곳이라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쇼핑을 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가격과 기능을 비교해 싸면서도 인기 높은 상품을 산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또는 책을 사기에 앞서 인터넷 댓글이나 별점을 확인해 평판 좋은 작품을 고른다. 음악은 인터넷으로 미리 듣고 나서 앨범 속 마음에 드는 곡만 내려받는다. 다들 영리해진 탓에 궤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학창시절, 들어보지도 않고 재킷만으로 선택한 레코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된다거나(대실패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딱히 취향이 아니었던 곡이 자꾸 듣다 보니 그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된 적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고르고 고르다 보면 '미리 정해진 어울림'밖에 만나지 못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되기에 감동한다.

쇼노 유지,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

(안은미 역, 정은문고, 2018) 100-101p 중에서

(91-92쪽)




여전히 사람들의 반응에 울고 웃는 저를 발견합니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나쁜 감정들이 나를 좀먹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무게 중심을 내 쪽으로 두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조금은 자유롭게, 조금은 나답게 살 수 있게 되겠지요.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압니다. 그 노력들이 내 삶을 빛나게 하는 무늬가 된다는 것도요.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전영애 역, 민음사, 2000) 64p 중에서

(125-125쪽)




그리고 방탄소년단에게 아내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편 윤득구 씨에게. 콘서트 추첨에 떨어지고 나서 꺼이꺼이 우는 날 달래주면서 이렇게 말해주었지.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꼭 가서 보고 싶은 장면들이 있는 너의 삶이 부럽다고. 덕질 때문에 마음앓이를 했던 또 다른 날, 당신은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한밤의 산책을 하면서 꼭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와서 힘들어하는 거 달래주는 꼴 같다면서 투덜거렸고. 그때마다 내 남편이 윤득구라서 참 다행이다 싶었어.

(155쪽, 에필로그 중에서)




내 인생에 나타나줘서, 나를 구해줘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방탄소년단을 만난 뒤로 나는 나를 잘 지켜내고 싶어졌어요.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아야, 지치지 않아야, 내가 받은 위로와 응원을 여러분에게 돌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도 아직 그 말을 찾지 못했어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랑을 이 책에 담아 보내요.

부디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159쪽, Special Thanks To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책<열다섯 번의 밤>, '보잘것없는' 지난날의 낡음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