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일.
<열다섯 번의 밤>
신유진
2018년 04월
1984BOOKS
작가는 어쩐지 '보잘것없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다. 그게 마음에 든다. 자주 써서 음절의 귀퉁이가 닳아버린 것 같은, 정말로 '보잘것없어'진 것만 같은 그 뭉툭한 느낌이 좋았다. 세상의, 나의 낡고 빛바랜 것들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읽어내고 앞으로의 일을 더듬어 보는 그 작고 요란하지 않은 사소한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누구나가 그렇듯, 그 자신의 지금을 이룬 것은 많은 부분 유년의 오래된 기억일 테다. 작가도 그런 것 같았다. 일상에서 어떤 발상에, 생각에 마주칠 때마다 이건 어디에서 왔을까 가늠하며 아주 오래된 옛일을 가늠해보는 내 습관과도 비슷했다. 서로의 어깨를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교차로에서, 작가와 멀찍이 서서 한참을 마주 본 기분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각자의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문장 끝 찍다 만 온점 두 개에서, 어설프게 흘려 쓴 필기체에서 지나온 날들의 나를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이 현실로부터 달아나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고 시작했다. 대단한 오해였던 것 같다. 글은 달아나는 나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와 앉혔다. 어느 날은 내 발로 순순히 따라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개처럼 끌려오기도 했다.
다른 곳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 이 보잘것없는 세계가 나의 것이니 이제는 이 황무지를 내 것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에 곡괭이 한 자루를 들고 아침을 기다린다. 도주에 실패한 나는 이제 밭을 갈 것이다. 꽃밭이 될지, 채소밭이 될지, 영원히 황무지로 남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저 갈아야 한다.
밤이 갔으니,
밤의 도주도 끝이 났으니.
(11쪽)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신이 없다. 도시의 익명성은 내게 너무 익숙한 방패다. 언제, 어디에서 받은 상처가 이렇게 웅크린 자세를 만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나는 움츠린 어깨에 어울리는, 얕은 인연들이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서 또 다른 안락감을 느낀다. 지금의 삶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사람들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모르는 이들 사이에 적당히 숨어 사는 것, 깊은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미숙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 아닐까.
(136-137쪽)
마초의 도시가 된 브르타뉴의 항구는 낯설었다. 나는 여름 바다와 항구도시를 싫어한다. 어쩐지 외설스러운 밤 조명이 싫고, 비린 술 냄새가 싫다.술 취한 이들의 걸걸한 목소리는 시끄럽고, 생과 사의 파도를 탔던 모험담이 남긴 영웅도 싫다. 한철인 모든 것들을 경계한다. 그들이 휩쓸고 간 자리, 남은 고독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야 내 것 같다. 웃긴 일이다. 나는 늘 떠났고 나의 모든 이들은 남겨졌는데, 정작 나는 내가 없는 자리를 글에 담길 원했다. 그러니 내가 말한 남겨짐과 고독과 외로움은 모두 환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한철 다녀간 내가 잊히는 게 두려워서 허구를 적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151-152쪽)
두고 온 것에는 원래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미련처럼 스무 살의 나를 그리워한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것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했던 그때를 또다시 추억하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이지 미래지향적인 인간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때가 좋아서, 지나고 나니까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서가 아니다. 지금보다 더 불행했고, 더 불안했던 그 시간에 대한 죄책감이다. 나는 그것을 안고 사는 것이 그 시간을 향한 속죄인 것만 같다.
(2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