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마르그리트 뒤라스
녹색광선
2020년 08월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꼭 사랑과 치정의 영역뿐만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눈짓과 말의 상호교환에서조차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와의 관계를 헤아리고 셈하는 일에 골몰한다. 비단 의식의 영역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매분. 매초.
식료품상은 말했다. “그래요, 내 아내가 카운터에서 죽어 있는 걸 발견했소. 죽음은 언제나 불행이죠. 언제나. 망자와 함께 산 세월이 아무리 고달팠어도 말이오."
(58쪽)
세 번째엔, 물고기 몇 마리를 낚아 올렸다. 물고기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어부가 사라에게 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던 하구의 늪지, 그 잿빛 강에서 그와 똑같이 완벽하고 침착하게 그물을 던졌던 다른 어부들을 상기시켰다. 정신을 조금만 집중해도, 바람에 잎이 떨어진 야자수의 신음과 바다의 포효가 뒤섞이고 거기에 맹그로브 나무들 사이를 뛰놀던 원숭이들의 깍깍거림까지 가세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은 사라와 오빠, 그렇게 둘이었고, 조각배를 타고서 쇠오리를 사냥했더랬다. 이젠 오빠는 죽고 없다.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사라는 삶의 그런 원리에 익숙해졌다고 믿었고 그 범주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부가 물고기를 몇 차례 더 낚아올렸다. 오빠는 죽었고 그와 함께 사라의 유년도 사라졌다. 삶은 늘 그런 식이었고 사라는 그런 때마다, 따라서 그 당시에도, 그렇게 믿고 싶어했다.
(79쪽)
“너를 전혀 원망하지 않아, 루디.”
"아니긴, 네가 날 원망하는 게 이렇게 똑똑히 느껴지는데. 날 이해해줘. 나도 우리가 어느 선에선, 그러니까 잘못 표현하거나 거짓으로 말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선에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이전도, 이후도 아닌 딱 그 경계에서. 하지만 그래도 난 기를 쓰고 침묵을 고수하는 사람들보다 그 경계에 부딪쳐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 경계를 허물고 표현해 보려 애쓰는 사람들이 더 좋아. 그래, 어쨌든 나한텐 그 사람들이 더 나아 보여. 너는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나한테 품고 있는 감정을 말하지 않은 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어. 난 그게 싫어. 너한테 상처가 될 테니까. 확신해.”
"어쩌면 말보단 다른 걸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말과 똑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를 똑같이 홀가분하게 해 주는 다른 거."
"너의 그 고지식함이 어떨 땐 참 좋더라."
(138-139쪽)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일주일 남짓 동안 사라와 친구들의 의식을 지배하던 이 세 가지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는 이틀을 담고 있다. (중략) 작열하는 태양, 무더위로 기진한 사람들, 오전부터 마셔대는 미지근한 캄파리, 끈적한 공기, 비가 올 듯 흐렸다가 다시 개는 하늘, 늘 똑같은 타령인 호텔 메뉴, 대화인 듯, 번갈아 내뱉는 각자의 독백인 듯 이어지는 얘기들, 수많은 침묵과 머뭇거림과 기다림들, 이 모든 권태로운 요소에 잠이 깬 직후와 잠들기 전의 몽롱함으로 열고 닫는 이야기 구조가 가세하여 나른함이 절정인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나른함 속에서 인물들은 뒤라스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적인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313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루디에게 늘 싸움을 거는 지나는 루디가 '다른 남자들처럼 그냥 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패배한 적군처럼 투항하듯,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녀는 식을 운명의 사랑을 살리고, 붙잡아둔다. 루디는 사랑을 환상 없이 바라보며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그는 말한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게 사랑이야.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315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