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삶>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민음사
2010년 07월
1950년대 이탈리아 로마 변두리의 빈민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없이 사는 그곳에서 '톰마소' 역시 되는대로 오늘을 살면서 그 이상의 내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삶의 구체적인 형태와 거기까지 닿을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다. '좋은 미래'에 대한 언감생심의 마음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무지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알고 인식하는 것은 오로지 눈앞의 가난과 폭력뿐이다. 톰마소는 어린 시절부터 노출된 폭력적인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 절도, 폭행에 이어 살인미수에까지 닿게 된 그의 인생이지만 그 누구도 진실된 충고와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서로의 진창 같은 삶에 대한 안타까움도 애달픔도 없다. 그가 사는 땅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왔고, 누구든 그렇게 살아갈 것이므로.
작가 파솔리니는 그러한 톰마소의 삶에 대해, 그의 삶을 이루는 가난과 폭력에 대해 가치 판단이나 윤리적 판단 없는 서술과 묘사로만 작품을 썼다. 옳고 그름이 인식되지 못한 채 저질러지는 야만과 폭력의 계보를 그대로 따라가는 과정에서 엿보이는 고통은 그래서 더욱 비통하다. 누구도 돌보지 않고 돌볼 수 없어서 폭력이 체화되어 버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톰마소'들의 학습된 무기력이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오늘을 굶지 않고 내일도 굶지 않는 일만이 삶의 목표가 되는 땅. 그곳에서의 삶에 대한 가감 없고 담담한 서술은, 시대의 횡포와 불평등에 대한 그 어떤 열정적인 고발보다 더 뜨거웠다.
카고네는 열서너 살쯤에 어머니가 창녀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좀 더 덩치가 커지기를 기다렸다. 이삼 년 후 그는 어머니에게 가서 멱살을 잡고 “날마다 500리라씩 나한테 줘, 그러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하고 말했다 한다. 그녀는 놀라서 그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카고네는 절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주 몰래 매달 1만 5000리라를 아들에게 줬고, 카고네는 얌전히 굴었다. 사실 그가 저지른 몰염치한 행동은 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단지 몸에 밴 나쁜 습관 때문이었다.
(59쪽)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을이 물에 잠겼고, 평생 그보다 더 나쁜 일도 겪었던 사람들이 사는 오막살이들이 부서졌을 뿐이다. 하지만 모두들 울고 있었고, 희망을 잃은 채 처참하게 학살당한 기분이었다. 흙탕물로 더러워진 그 붉은 천 조각, 톰마소가 수재민들이 우글거리는 사무실 한구석에 다시 갖다 놓은 그 붉은 깃발에서만 여전히 희망의 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488쪽)
그는 로마 변두리 빈민촌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로마 하층계급의 삶을 알았고, 이를 소설로 기록했다. 그는 '개인은 타인의 삶과 역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고, 자기를 지키려는 순수함은 불순함과 같다.'라는 자기반성을 하며 자신이 속한 계급이 아닌 타인, 역사를 이루는 민중의 삶을 이해하고자 했다. 파솔리니는 그람시의 유해」라는 시에서 우리네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악까지도 이해'하는 것이고, '그들을 표현하는 것은 그 악까지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옥을 이해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로 그곳에 남아 있어야 구원을 찾는 것'이라고 믿었다.
(496쪽, 작품 해설 중에서)
톰마소는 부르주아계급이 아닌 자신이 속한 프롤레타리아계급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적인 죽음을 맞았다. 파솔리니는 가난이 인물에게 서사적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가난은 그 내적 특성상 서사적이다.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 하층 무산계급의 심리 안에 들어 있는 요소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늘 순수하고 그래서 본질적이다.” 그 분위기에 영웅적인 죽음이 덧씌워지며 톰마소가 가진 인간 본연의 성스러움이 빛을 발한다.
(503쪽,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