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서도 첫사랑이 찾아온다.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사람이 있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서른이 넘는 해를 살아오면서 남들은 죽을 것처럼 아파보고, 다시는 잊을 수 없는 행복을 맛보는 동안, 나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게 내 운명인가 보다 체념하며 살고 있었다. 평생과 영원을 약속하며 결혼하는 사람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제 자신 보다도 소중하게 아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나 같은 사람도 하나는 있을 수 있지 않나. 세상에 사랑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이지 않을까, 그렇게 위안 아닌 위로를 하며 무미건조하게 버텨가고 있었나 보다.
결론적으로는, 나는 가졌다가 다시 잃었다.
이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서 급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내가 또 함부로 사람을 믿고, 함부로 마음을 열었던 건 아닐까
믿어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은 나에게 네가 처음이라, 네가 말하던 영원이 사실이 되길 바랐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 망할 타이밍이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는 건지. 나는 네가 나에게 타이밍이 딱 맞는 사람이라 그렇게 믿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먼저 마음을 연 적 없는 나에게, 너는 조심스레 다가와 마음을 열게 노력하던 네 모습이 예뻐 나는 방심한 채 함부로 너에게 마음을 열었다.
조심스레 내 걱정을 하며 다가와준 사람이 그동안 없었으니, 나를 홀릴만했지 않았나. 먼저 다가와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고 너는 떠나가버렸다. 항상 도망치듯 버리는 사람은 내쪽이었는데, 버려지는 건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하며,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무하고도 허망하게 일상을 지내고 있다. 네가 나에게 빠지는 속도에 비하면 나는 아주 천천히 물이 옷깃에 스미듯 젖고 있었다. 그 사랑에 빠지는 타이밍 또한 어긋났던 걸까, 너는 이제 사랑을 줄 수 없게 되었는데, 나는 한창 너에게 사랑을 퍼 나르려 많은 궁리들을 하고 있었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예전에 나는 이 영화를 보고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타이밍에 맞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영화 속 사랑의 타이밍은 계속 어긋나고 주인공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최악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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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에게 최악이 되어버리는 이유도,
다 그 망할 타이밍 때문이 아닐까.
한 번도 싸운 적도 없이, 너와 나는 이렇게 멀어졌는데, 좋은 이별은 존재할 줄 알았다. 비록 내가 아프지만 서로에게 미운 감정이 없이 헤어지게 된다면, 좋은 이별은 존재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좋은 이별이란 판타지 같은 이별은 해본 적도 없으면서, 너는 내게 좋은 이별이 될 거라 잠시 착각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나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너의 마지막은 나에게 아프고 다시 최악이 되어버린 듯하다.
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아마 네가 나에게 그만큼의 상처는 주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조차도 줄었으니, 무엇이 널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나는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너의 솔직함이란 너만 알 수 있는 것일 테니. 그전에 네가 보여주는 행동들이 바로 사랑이었겠지. 네가 점점 달라질 때 어렴풋이 니 눈치를 보던 나는 너의 사랑이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이유에서든 너는 나에게 등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였지 않았나.
진심이었다던 너의 말들이 더 아프게 들려온 마지막이 계속 마음에 남아 후회스럽다. 왜 나는 너처럼 흠뻑 빠지지 못하고 조심스러웠나. 내 사랑이 너에게는 작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나를 이렇게 쉽게 놔버린 게 아닐까. 사실, 그 진심이었다는 게 아주 얄팍한 진심이어서 그때만 유효했던 건 아닐까.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진심처럼 앞뒤 재보지 않고 마구 쏘아대는 폭죽같이 순간만 화려한 진심은 아니었나. 앞뒤재지 않고 달려들어보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마음은 아니었을까. 네가 시간을 갖자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만 생각하고, 그런 너의 마음만 수천번 생각해 봤던 것 같다. 그 모든 건 다 너만 알 진심일 텐데, 내가 수백 번, 수천번, 수만 번 생각해 봐야 알턱이 있나. 어쨌든 이렇게 떠나버린 너의 진심이 어렵게 연 내 진심을 너무 가벼이 여긴 것 같아 속상하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무대뽀같은 네 모습들 모르고 너를 만났던 건 아니었다. 다 알고 나에게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네가 가끔 저런 모습들을 보여도 난 받아줄 수 있을 거라, 받아주겠다 다짐했었다. 이렇게 이별조차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단칼에 감정을 끊어낼 줄도 모르고, 나는 주저하기만 하다가 이번에도 또 늦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너를 이해하고 싶은 걸 보면, 내가 아직 널 많이 좋아하나 봐.
아직도 자상하고 세심하게 날 챙겨주던 네 모습들을 되새기고 있어. 이제는 네가 없는데...
이렇게 널 잃고 나서야 너를 더 그리워하고 내가 널 많이 좋아했다는 걸 깨달아.
난 한없이 다정했던 그때의 네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