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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10. 2024

그건 아마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서른이 넘어서도 첫사랑이 찾아온다.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사람이 있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서른이 넘는 해를 살아오면서 남들은 죽을 것처럼 아파보고, 다시는 잊을 수 없는 행복을 맛보는 동안, 나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게 내 운명인가 보다 체념하며 살고 있었다. 평생과 영원을 약속하며 결혼하는 사람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제 자신 보다도 소중하게 아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나 같은 사람도 하나는 있을 수 있지 않나. 세상에 사랑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이지 않을까, 그렇게 위안 아닌 위로를 하며 무미건조하게 버텨가고 있었나 보다.


결론적으로는, 나는 가졌다가 다시 잃었다.

이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서 급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내가 또 함부로 사람을 믿고, 함부로 마음을 열었던 건 아닐까

믿어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은 나에게 네가 처음이라, 네가 말하던 영원이 사실이 되길 바랐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 망할 타이밍이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는 건지. 나는 네가 나에게 타이밍이 딱 맞는 사람이라 그렇게 믿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먼저 마음을 연 적 없는 나에게, 너는 조심스레 다가와 마음을 열게 노력하던 네 모습이 예뻐 나는 방심한 채 함부로 너에게 마음을 열었다.

조심스레 내 걱정을 하며 다가와준 사람이 그동안 없었으니, 나를 홀릴만했지 않았나. 먼저 다가와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고 너는 떠나가버렸다. 항상 도망치듯 버리는 사람은 내쪽이었는데, 버려지는 건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하며,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무하고도 허망하게 일상을 지내고 있다. 네가 나에게 빠지는 속도에 비하면 나는 아주 천천히 물이 옷깃에 스미듯 젖고 있었다. 그 사랑에 빠지는 타이밍 또한 어긋났던 걸까, 너는 이제 사랑을 줄 수 없게 되었는데, 나는 한창 너에게 사랑을 퍼 나르려 많은 궁리들을 하고 있었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예전에 나는 이 영화를 보고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타이밍에 맞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 영화 속 사랑의 타이밍은 계속 어긋나고 주인공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최악이 되어버린다.

-

네가 나에게 최악이 되어버리는 이유도,

다 그 망할 타이밍 때문이 아닐까.

한 번도 싸운 적도 없이, 너와 나는 이렇게 멀어졌는데, 좋은 이별은 존재할 줄 알았다. 비록 내가 아프지만 서로에게 미운 감정이 없이 헤어지게 된다면, 좋은 이별은 존재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좋은 이별이란 판타지 같은 이별은 해본 적도 없으면서, 너는 내게 좋은 이별이 될 거라 잠시 착각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나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너의 마지막은 나에게 아프고 다시 최악이 되어버린 듯하다.


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아마 네가 나에게 그만큼의 상처는 주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조차도 줄었으니, 무엇이 널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나는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너의 솔직함이란 너만 알 수 있는 것일 테니. 그전에 네가 보여주는 행동들이 바로 사랑이었겠지. 네가 점점 달라질 때 어렴풋이 니 눈치를 보던 나는 너의 사랑이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어떤 이유에서든 너는 나에게 등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였지 않았나.


진심이었다던 너의 말들이 더 아프게 들려온 마지막이 계속 마음에 남아 후회스럽다. 왜 나는 너처럼 흠뻑 빠지지 못하고 조심스러웠나. 내 사랑이 너에게는 작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나를 이렇게 쉽게 놔버린 게 아닐까. 사실, 그 진심이었다는 게 아주 얄팍한 진심이어서 그때만 유효했던 건 아닐까.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진심처럼 앞뒤 재보지 않고 마구 쏘아대는 폭죽같이 순간만 화려한 진심은 아니었나. 앞뒤재지 않고 달려들어보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마음은 아니었을까. 네가 시간을 갖자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만 생각하고, 그런 너의 마음만 수천번 생각해 봤던 것 같다. 그 모든 건 다 너만 알 진심일 텐데, 내가 수백 번, 수천번, 수만 번 생각해 봐야 알턱이 있나. 어쨌든 이렇게 떠나버린 너의 진심이 어렵게 연 내 진심을 너무 가벼이 여긴 것 같아 속상하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무대뽀같은 네 모습들 모르고 너를 만났던 건 아니었다. 다 알고 나에게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네가 가끔 저런 모습들을 보여도 난 받아줄 수 있을 거라, 받아주겠다 다짐했었다. 이렇게 이별조차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단칼에 감정을 끊어낼 줄도 모르고, 나는 주저하기만 하다가 이번에도 또 늦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너를 이해하고 싶은 걸 보면, 내가 아직 널 많이 좋아하나 봐.

아직도 자상하고 세심하게 날 챙겨주던 네 모습들을 되새기고 있어. 이제는 네가 없는데...

이렇게 널 잃고 나서야 너를 더 그리워하고 내가 널 많이 좋아했다는 걸 깨달아.


난 한없이 다정했던 그때의 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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