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2 : 쉬움과 어려움의 균형①

개지랄의 효용성

by Abysskit

0.


문화의 형성, 소비와 그 이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설득력'에 대한 얘기기도 하고, 역시나 압력(두려움)과 해소를 기반으로 하는 행동동기들을 깔고 전개하게 되겠다. 거의 의식의 흐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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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개해있던 생각의 덩어리가 맺힌 지점은 '트로트'에 대한 시선이었다.


왜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뽕삘나는 음악과 적나라한 가사가 좋아질까? 나도 모르게 점차 나물반찬이 땡기는 것 처럼,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나이만 들면 트로트에 대한 선호도가 알 수 없이 불어나버리는 듯 싶다. 이게 단순히 트로트를 당시에 유행하던 세대가 고령화되어 나타나는 '지난 시대의 음악'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한 연령대의 전유물처럼 느끼게 된다는 데에 포인트가 있다. 사춘기의 록/힙합 등에 대한 갑작스런 빠져듦처럼, 또 어린이들의 동요가 주로 가진 특징들처럼, 포크에 대한 애수 또한 연륜과 함께 휘몰아치는 듯 하다. K-음악의 세부적 유행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지간에, 임영웅이든 장윤정이든 나훈아든 별다른 제한적 수식 없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마이너한 장르의 '혜성같이 나타난 구원투수'들이 가진 입지와 비교하면 가진 결부터가 명확하게 다르다.


그러니까 그게 왜 그러냐는거지.

나는 항상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여러 장치들로 희석하려고 해도 B급 정서가 그득한 가사를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었다. 세대가 바뀌며 트로트라는 장르에 여러 음악적인 기술들이 첨가되어 자연스러움이 좀 더 배어들더라도, 본연의 그 찐득한 맛은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다. 때로는 그 어정쩡하게 뿌려진 MSG가 더욱 더 혐오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찐찐찐찐이야~'도, '니가 왜 거기서 나와~'도, 공중파까지 도달해 수명이 다한 밈을 또 한번 우려낸듯한 저급한 조리방식이 느껴져서 몸서리치곤 했다.



2.


그러던 중 문화산업 수업에서 어느 발표를 듣다가, 문득 눈길을 훅 잡아끈 내용이 있었다. 누군가 트로트의 의의를 주제로 했던 것이다.


트로트의 구성적 특징은 가장 근본적인 5음계에 2박 계열 단순한 박자에 있고, 여기서 이제 7음계나 4박으로 조금씩 변주되어 왔다. 여느 다른 문화요소들처럼 트로트도 다른 여러 장르들과 접목되어 확장되어나가고 있지만 뼈대가 되는 바탕은 저기에 있다. (paraphrased)


헐..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머리를 때렸다.

그러니까 트로트는 당연하게도 청자가 이해하기 쉬운 음악인 것이다!



이 장르의 태생부터가 어떤 복잡하고 은근한 기교 또는 작가주의적 한계 돌파에 대한 고찰을 담기보다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대한 자연스러운 표출을 강점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거였다. 그러니 가사도 정서도 가장 단순하고 근본적인 표현과 내용을 담아내는 게 가장 어울린다. 나이들면 혼잣말에 괜스레 흥얼흥얼 붙는 멜로디가 어쩔 수 없이 가장 전형적인 음계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마트에~ 가고있지요호~' 몸에 각인된 수준으로 가장 쉽고, 익숙하고, 편안하다. 구현에 신경쓸 필요 없이 날 것 그대로의 의식과 정서를 표출할 수 있다. 당신없인 못살아 정말못살아! 떼창도 제일 쉽고 맛깔난다. 다음 멜로디의 진행은 내 몸이 알아서 부르고있다. 지금 땡벌이라고 그랬냐?


다시말해 편안한 문화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종점이 트로트일 수밖에 없는 거였다.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편안함이란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상태와 같은 개념이고, 그건 일반적으로는 선망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요소이다. 나무는 초록색이고, 장미는 빨갛고, 그 사이를 평화로이 거니면서 'What a wonderful world!'를 외치는 자신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장르는 다르지만ㅋㅋㅋ)



그럼 이게 왜이렇게 싫은 지도, 구닥다리같이 느껴지는 지도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

나만 그런 건 아니란 거 알아.



3.


'뽕삘'나는 음악들이 K팝의 주류이던 때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90년대를 거쳐 영미 팝에 영향을 점점 더 받으면서 한국에서도 레게와 뉴잭스윙, R&B와 정통 파워발라드가 들어왔던 걸로 알고있는데, 이게 주류음악이 미묘한 트로트맛으로 자꾸 기울어갔던 기억이 알음알음 난다. 예를 들어서 같은 레게풍인 김건모의 <핑계>와 비교했을때도 마로니에 <칵테일사랑>이 좀 묘하게 현지화된 느낌을 풍기고, 지누션의 <말해줘>도 뉴잭스윙풍이지만 지금 들어보면 엄정화 보컬라인이 진퉁 양놈 맛보다 약간 변주가 가미된 트로트 느낌이란 생각이 든다. <너에게로 또다시>처럼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처럼 블루스 섞인 발라드도 마찬가지였고..

2000년대 중반까지도 유행의 주요 요소는 내내 비슷했던 것 같다. '테크노'라는 이름 하에 한국에서 전자음 댄스 장르가 뽕끼와 어우러져 엄청 흥했던 기억이 난다. 스페이스A <섹시한 남자>라거나 이정현의 <와>라거나.. 거기다 임창정이나 이수영을 위시한 발라드의 색깔도 제법 뽕삘이 가득했었음은 물론이고, 라틴팝의 유행 때도 일본을 거쳐서 들어와서 그런건지 엔카스러운 구수함이 드문드문 보인다. <흔들린 우정>의 후렴부 진행이 그랬다. 이후 SG워너비와 조영수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고, FT아일랜드 <사랑앓이>나 2ne1의 <롤리팝>은 곡 구성 상 트로트처럼 불렀을 때 훨씬 본래의 맛깔이 난다.


한참 지난 2020년대에 돌아보면, 과장을 좀 보태서 '저거 전부 다 당시의 유행이란 스킨을 뒤집어 씌워놓은 트로트에 불과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저 시절에 진퉁 '뽕삘'과 트로트는 한물 간 구시대의 낡은 장르 취급을 받았다. 정작 메인스트림으로 유행했던 음악들은 트로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아이러니하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뽕삘은 쉽고 찰떡같이 붙으니까!


대중적이고 쉬운 음악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4.


그러니 우리는 '쉬움' 그 자체에 대한 의의와 한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음악적 비유의 연장선상에서, 쉬운 음악은 진행이 전형적이라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표현의 한계가 크고, 어려운 음악은 수용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청자의 몰입이 쉽지 않다. 그러니 결국 '지루함'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와 '피로함'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 사이에서 문화의 균형이 잡히며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바로 '신선함'의 정체다. 검증된 맛 중에 가장 특이한 맛, 특이한 맛 중에 가장 익숙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문화적 진보의 발자국은 멀리뛰기가 아닌 '다음 걸음'으로 나타나나보다.


비유를 확장하더라도 마찬가지의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예술계에서 신선함의 균형점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기준점으로 잡은 다음 도약'으로 지향된다. 그것이 완벽한 반박의 모양으로 나타나든 약간의 변형을 모색했든 도약의 양상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나, 주류 질서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는 '신선함'이란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술사가 정석적으로 이같은 과정을 거쳤다. 표현의 중점은 신에서 인간으로, 정물에서 추상으로, 형성에서 파괴로 옮겨간다. 선행하는 패러다임과 그로부터의 탈주가 없다면 시대상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었다.철학계도 마찬가지의 진보 과정을 겪는다. 기존 주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제시가 주요한 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신이 있고, 그로부터의 독립이 있고, 그 이후에야 이성의 건전성과 생물학적 해석이 자리할 수 있었다.

과연 그 중 어느 단계를 빠뜨리고 두-세 계단씩도 발전할 수 있었을까?

가령, 봉건사회적인 질서의 타파가 핵심 화두로 퍼지는 세상에서 현대 사회의 젠더 범람이 가진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고찰을 미리 엿볼 수도 있는걸까? 혹시 고대인에게 물어보는 SNS 중독의 폐해는? 라이트 형제에게 물어보는 AI 오토파일럿의 주의점은?

써놓기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 비직관적 통찰은 개인적 수준에서의 천재성으로나 가능할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적절하며, 별다른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인 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자리하기 어렵다. 적어도 발전의 '정반합' (이겨울씨가 요약해준)적인 모델보다는 훨씬 국소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신선함'이란 절대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으며, 마치 알고리즘의 유사 작품 추천 경향처럼 작동한다고 여긴다. 즉 모체로 하고 있는 '쉬움'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전제 하의 돌연변이적인 확장이라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왜 신선함을 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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