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2 : 쉬움과 어려움의 균형②

불안이 변이시킨 광기의 효용성

by Abysskit

5.


왜 신선함을 추구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쉬움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다양할 수 있겠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복잡해지다보니 이제 원초적인 접근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정서 전달의 용이성이 늘고 더욱 섬세해지기를 바라게 될 수도 있다. 기본 도형으로 창문 달린 집을 그릴 줄 알게 됐다면 이제 연기나는 굴뚝과 담쟁이 덩굴도 표현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또는 짜임새있는 구성을 가진 존재에 경외감을 느끼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흥분하게 될 수도 있다. <해리포터>의 방대한 마법적 세계관에 빠져들거나, 알지도 못했던 동양의 나라들이 만든 어떤 문화적 완성도가 높았을때 느끼는 충격 등이 그러할 수 있다.

자신의 쉽고 단순한 취향과 주류의 취향 사이에 격차가 있어서, 쉬웠던 표현들을 대체하거나, 방어를 하거나, 거리를 둬야할 수도 있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라일리는 그간의 취향이던 밴드를 폄하하고 좀 더 또래 유행에 맞는 (본인에게 어려운) 음악을 좇아가려 애쓴다.


즉 공통적으로 1) 현재 자극된 불만족과 2) 미지에 대한 낙관적 희망, 그리고 3) 피로감에 대한 기피기전이 합쳐진 결과물이 바로 '신선함'에 대한 갈증으로 형성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 균형점은 앞선 정리와 동일하게 '지루함'과 '피로함' 사이에서 최적의 도약 지점을 찾는 시도와 같다. 다만 '지루함'의 위치에 좀 더 폭력적인 유인이 들어가있을 뿐이다.

다시말해 한계가 눈앞에 보이는 편안함(쉬움)이란 바닥에 구멍이 난 나룻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당장 수영을 배우는 것은 어렵고 구명보트를 타는 건 또 불안해보이니, 비슷한 모양의 좀 더 튼튼한 나룻배로 갈아타는 선택을 할 때 제일 안도감이 크게 느껴진다. 또 다른 구멍이 보이기 전까지는 튼튼한 나룻배는 아주 신선하고 만족스럽다. 거대한 유람선정도가 보인다면 또 모르겠지만.



6.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할수록 바닥의 구멍은 시급한 문제로 느껴질 것이다. 침몰에 대한 불안은 강력하고 이에 비례해 새 해결책에 대한 안도감도 훨씬 커다랗다. 그러니 빠르게 갈아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편안함'의 보장책일 것이다. 거꾸로 표현하자면, 더 나은 선택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유인이 아주 강하고 위협적이다.


대부분의 사춘기와 학창시절은 이런 모양에 가장 부합한다.

낡은 것과 튼튼한 것에 대한 눈은 이제 갓 생겼으나, 자신의 불안 뿐만 아니라 주변의 불안도 감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함에 대해 내내 강박적으로 시달려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가장 유행에 민감하고, 무리짓기와 낙인찍기의 양상도 가장 적나라하다.

사춘기를 겪는동안 불만이 가득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먼 곳의 한계는 잘 보이지 않고, 지금 내 발밑에 뚫린 구멍을 볼 수 있는 눈까지만 시야가 닿아서 그렇다. 이럴 때 당장 탈출해야 한다는 공포의 크기는 먼 곳의 미적지근한 막막함보다 훨씬 강렬하다. 당장 익사할 것 같으면 장기적인 생존상황은 고려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어쩌면 둔감한 사람을 기준으로 짜여진 시스템에 대해 예민한 사람이 느끼는 피로도와 같은 원리를 가진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 내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어떠한 이유를 들먹이면서, 믿기 힘든 타인/타 시스템이 나의 거처를 강제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퍼덕퍼덕 자리를 옮기고싶을 수밖에 없다. 더 강하고, 더 빠르고, 더 최신인 무언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종자들이 모여있으면 당연히 서로간의 스트레스는 극도로 높아지며 위계질서는 극단적으로 자리잡는다. 바로 여기서 개지랄이 생성된다. 지랄판에 휘말려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문화적 생존에 가장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자신을 검열하고, 타인을 검열한다.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찾으려는 데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들이게 된다. 가장 편안한 곳, 즉 지향점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광인들의 사정거리 바깥이다. 주로 가장 크고, 높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무결한 곳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지랄의 효용성이 위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순도 높게 연성되어간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자신들은 최전선에, 사선에 놓여있다. 즉 불안으로 인한 동력이 최고점에 다다라 이보다 더 레이더이자 배터리일 수 없게 되 것이다.

유행을 좇지 않으면 죽는다.

어렵거나 낡은 것들을 고칠 힘은 없으니 낙인찍는다, 저건 하면 죽어.

신선하지 않으면 죽는다.

너무 동떨어져도 죽는다.

어설프거나 약점을 보여도 죽는다.


이로 인해 연마되고 연마된 기준선에 부합하고자 하는 게 10대 문화이자, 나아가 K 대중문화의 핵심 동력이 아닌가 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높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검열이 완성도를 만들어내는, 다양성보다 무결점을 무기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구조를 영위하고 있다.



7.


이 강박적인 업계 분위기가 내재하고 있는 장단점 또한 극단적으로 뚜렷하게 진화해왔다. 같은 비유를 이어내려와, K 팝으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K팝의 무결성은 어머어마하다. 이 세계관이 가진 완성도는 주로 일사불란한 단체의 움직임에 뿌리를 둔다. 아이돌은 칼군무를 기본 소양으로 장착하고, 팬들은 응원법을 갖추고 지키는 것이 기초 질서에 속한다. 이에 관해 2010년쯤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떤 토크쇼에서 진행됐던 Kesha의 TikTok 라이브였다.

보면서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춤 동작은 대충이고, 노래와도 어울리지 않고, 서로 잘 맞지도 않는다. 고작 두명의 백댄서와 같이 춤을 추는데도 중구난방이라는 게 대단하다면 또 대단한 포인트였다. 반면 한국은 당시만 해도 2-3세대 아이돌을 중심으로 이미 칼군무가 유행하고 있었다. 솔로 댄스가수를 차치하고서라도 남돌 / 여돌을 불문하고 안무의 수준은 아무도 떨어지지 않았다. 엉망인 라이브와 업계의 상품화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을 때에도 '쇼'로서의 무대의 수준은 늘 뛰어났다. 프로라는 느낌이 분명하다.


반대로 준거의 수준 아래로 떨어지는 모든 요소들은 공공의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다. 같은 시기에 '전설의 가수'라는 반어적인 멸칭을 받은 'Ori'는 아직까지 수준미달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제야 소식을 듣고 17세 소녀를 묵살내버렸다며 한국 정서를 비판하는 외국 댓글이 간간이 보인다는 게 오히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당시는 'MR 제거'라는 검증의 단두대가 유행했던 시기기도 했다. 기억하기로는 '선택적 라이브'라는 놀림거리가 되어 '태군'이라는 가수가 반짝 뜨고 묻혀버렸다. 혹 격한 안무와의 병행을 위해 AR을 통한 자연스러운 무대 흐름을 갖춘구성이더라도 당시에는 '라이브의 부재'라는 고발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기조는 세대를 불문하고 매체를 불문하고 늘 K 대중문화의 주요한 투영 양상이었다. '시커먼스'부터 시작해 '롱다리'와 '숏다리'는 신체적 특징에 대한 우열을 명확히 가려 대중에게 안정감을 준다. 당시 '성시경'의 캐릭터는 '버터왕자'로, 이질적인 성격에 대해 가벼운 낙인을 찍어 마찬가지로 안정감 도모에 기여했다. '문희준'은 아이돌 출신으로서 '락커'라는 신성한 (컴플렉스에 기반한) 기준에 미달되어 온갖 조리돌림의 대상이 됐다. '유재석'의 미담은 초인적으로 구설수없는 자기관리와 행실이 큰 역할을 하고, 그조차도 악성적이게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간혹 존재했다. '순간 캡쳐'가 유행해서 찰나의 결점을 노출시키는 문화가 유행하기도 했고, '시청자 게시판'이 곧 해당 회차의 미달점을 호도하도록 선전하는 창구가 되기도 했으며, '깡'의 유행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결점을 부각하는 데에 주요한 원인이 있었다.

물론 어느 문화권이나 결점에 대한 희화화는 자연스러운 유머의 형성방향이고, 당연히 대중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성을 면밀히 분류했을 때, 해당 문화의 대중이 어떠한 통합감을 자극받아 만족하는 지를 거꾸로 추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문화의 '너드'들은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활동적이며 문화적으로 무던한 '미국 표준상'의 대척점에 있는 수준 미달적 존재로 자주 묘사된다. '빅뱅이론'의 인기는 작중 '셸든'이 보이는 비합리적인 행위들에 대한 해학적 조명이 8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게이'의 스테레오타입 또한 '배드애스 마초'의 반대편에 위치해 희화화된다. 다시말해 US-대중문화의 균형점은 강하고 튼튼한, 결점이나 규칙을 개의치 않는 인간상을 향해 간다. '자기희화화'로 유명한 데드풀 - 레이놀즈 - 과 코난 오브라이언 등이 사랑받는 것도 같은 방향성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오징어 게임'에서 '장덕수'가 '조상우'보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캐릭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 또한 굉장히 독특한 문화적 차이를 시사한다.



8.


쓰다보니 존나 뻔한 얘기지만 이는 분명 각자가 가진 생활 환경의 양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예시의 연장으로, 넓은 땅과 부족한 치안 인력, 그리고 인프라의 지역간 격차가 심한 환경에서는 '편안함'을 누리려면 육체적, 정신적 강함은 필수적으로 선망받는 자원이 된다. 일정 수준의 자기방어능력은 사회적으로 권장되기까지 한다.

반면 한국은 밀도높고, 안전하고, 무엇보다 다소간의 자유를 대가로 편리함을 누리는 삶의 양상이 극도로 발전해왔다. 일말의 물리적 충돌도 좋은 사회적 결과를 낳기 힘들다. 자연스레 육체적 강함은 과시 용도 외에는 별다른 사용처가 없다. 반대로 사회적인 생존의 유리함이 곧 '쉬움'이자 '편안함'과 직결되는 문화에 점차 가까워졌다. 속임수를 거르고 좋은 거래를 골라 '호갱'이 되지 않는 법, 좋은 자리, 좋은학벌을 쉽게 가지는 법, 상대와 나의 사회적 지위를 빠르게 파악하는 법 등이 유망한 능력이 되겠다. 즉 모두가 예외없이 노련한 장사꾼인 세계관인 것이다. '약점을 들키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기본기일 지도 모른다. 상대가 가진 패를 모를 때 가장 유리한 거래자는 완전무결한 인간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뒤만 쫓아가면 된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압력을 어디엔가는 지랄해서 해소하기 위해, 또 해소지랄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미친듯이 위로 올라가고자 하고 있다. 순진할 틈이 없다.


물론 '어떤 데미지로부터도 무적인 배드애스'가 불가능한 이상향이듯 '어떤 결점도 없는 잘난 승리자'라는 가정 또한 현실적이지 않다. 나아가 시야가 짧아서 오는 사회적 불안도 자연스러운 성숙의 과정을 통해 점차 그 윤곽이 잡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나룻배의 구멍을 막는 법을 배우고야 만다.


그러니 약간 방향을 틀어서, 알아놓을 필요가 있다.

K-사회에서 불안으로부터 풀려난 개인은 결국 어떻게 변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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