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엔, 첫눈이 유난히도 빨리 내렸다
열다섯. 나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수업을 째고 친구들과 동네 코인노래방과 오락실을 전전했다. 반장이던 친구와 부반장이던 내가 그러고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출석부를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 순간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교실이 얼어붙었고,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아보면 철없는 방황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할아버지는 아프셨다.
그해 가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이별이었다.
할아버지는 다른 어른들처럼 남동생만 찾지 않았다. 명절날 친척들이 우르르 동생한테 몰려갈 때도 할아버지는 "우리 똥강아지" 하며 나를 먼저 안아주셨다. 지금은 그 목소리가 어떤 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웃으며 나를 부르던 얼굴만은 아주 생생하다.
평생 곁을 지켜줄 것 같던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떠나버렸다는 사실은 철없던 나의 마음에 너무나 크게 내려앉았다.
장례식장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는데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 누가 울고 있었는지, 어떤 향이 퍼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꿈을 꾸는 것처럼 멍했던 순간들.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아빠가 몇 번이나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그 장면만 유난히 선명하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 오히려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를 잃은 그 이후에도, 나는 비슷하게 흔들렸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무언가를 버티는 듯 버티지 못하는 듯 애매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고, 학교 운동장의 소음도,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어느 날부터인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집에서는 말수가 줄었고, 학교에서는 내가 있는 자리가 점점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무렵, 또래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그런데 친구의 친구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죽음이 갑자기 가까워졌다. 마냥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도 숨이 막히는데.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계속 버텨냈지만,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았다. 더 무너지기 전에,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러운 결심처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온 선택이었다. 버티려 했던 시간보다, 버티지 못해 무너져 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자퇴하고 뭐 할 건데?"
처음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엄마는 다시는 그런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골프채를 드셨다.
나는 변명처럼 이유를 늘어놓았다. 원하던 외고를 못 가서 학교 생활에 흥미가 없어졌다고, 그럴싸한 미래 계획이 있다고. 사실 그건 핑계였다. 진짜 이유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때의 베프가 몇 차례 부모님을 설득해 주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학교를 나오지도 못한 채,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그만두던 날, 나는 이상할 만큼 후련했다.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드디어 도착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길로,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친구 학교 축제를 보러 갔던 나를 기억한다. 그날의 나를 떠올리면 그저 숨을 한번 제대로 쉬어보고 싶었던 열여섯의 마음이 느껴진다.
할아버지를 잃은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학교의 나,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이루던 많은 것들이 아주 조금씩,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잃었던 건 '사람들' 자체가 아니라 세상과 나를 이어주던 마지막 끈 같은 것이었다.
열다섯의 가을부터 열여섯의 가을까지. 나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로도 남을 수 없는 상태로 어설프게 사회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어?"
라는 질문에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내 중퇴는 도망에 가까웠고, 그 도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빠져나온 자리에서 나는 무너지는 법도, 다시 일어나는 법도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상실은 내 삶에 오래 남아 천천히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해 가을엔, 첫눈이 유난히도 빨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