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시, 첫 카메라, 그리고 열흘의 여행
몸이 회복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였다.
그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일단, 졸업장.
멈춰 있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혼자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별 의미 없는 종이 한 장이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나의 삶이 다시 시작했다”는 작은 증거였다.
합격 이후 등록했던 승무원 학원은 아주 잠깐의 선택이었다. 어릴 때 외국에서 잠깐 학교를 다녔던 경험은 내게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줬다. 그 기억 때문인지 늘 ‘여행하며 사는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학원에서 마주한 현실은 내가 꿈꾸던 세계와는 너무 멀었다. 키, 몸무게, 외모가 기준이 되는 이상한 풍경 속에서 숨이 조금씩 막혔다.
‘아, 여기는 내가 선택할 길이 아니구나.’ 그 생각만 분명하게 남았다.
의욕을 잃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환불을 했고, 무언가를 또 끝맺지 못했다는 허무함만 남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치른 첫 수능은 솔직히 말하면 도망에 가까웠다. 준비되지 않은 시험의 결과는 당연했다.
나는 다시 도망쳤다. 이번엔 아르바이트였다.
카페에서, 도넛 가게에서, 백화점 행사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내가 번 돈이 통장에 찍히는 기분을 처음 맛봤다. 몸은 고단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모은 돈으로 나는 인생 첫 카메라, 캐논 700D를 샀다.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묵직함, 셔터를 누를 때의 작은 떨림.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세상은 조금 더 특별해 보였다.
그래서 그 카메라를 메고 혼자 기차에 올랐다. 아무 계획도 목적지도 없는 ‘내일로 여행’.
동네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의 시선이 싫었던 것도 있다. 누군가 직접 묻지 않아도 언제나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왜 이 시간에 밖에 돌아다니니? 학교에 있어야지.”
그래서 떠났다.
첫 도시는 전주였다. 미성년자 숙박 동의서와 주민등록증 한 장을 보호자 삼아서.
그리고 손목에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오래된 시계를 고쳐 찼다. 낯선 길 위에서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다. 그 시계는 지금도 가끔 부적 삼아 소중히 차고 다니는 내 오랜 보물이다.
여행 중에는 숙소에서 거절도 당했고, ‘왜 학교에 있지 않지?’라는 시선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따뜻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낯선 어른들은 내 서툰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섣불리 충고하려 들지 않고 그저 "괜찮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들어주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열흘 동안 전주, 순천, 부산, 서울을 흘러 다니며 나는 처음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를 배웠다.
눈이 내리던 전주 벽화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멈춰 있는 관람차 모형을 찍었다. 자꾸만 들여다보면 움직일 것만 같은 사진. 그 사진은 지금도 가끔 꺼내본다.
열흘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여행에서 만난 어른들의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OO 씨 아직 어리잖아.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
그 말은 내 마음을 울렸다. 세상은 완전히 차갑기만 한 곳은 아니구나. 나를 이렇게 봐주는 사람도 있구나.
그들은 나를 그저 "자퇴하고 혼자 여행하는 특이한 17살"로 보는 게 아니었다. 아주 용기 있게 세상으로 한 발 내디딘 17살, 그 이상으로 느껴지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다시 시작해 볼 용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