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가면 답이 있을 줄 알았다

무소속의 방황 끝에 내디딘 한 걸음

by 라피누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수술을 했고, 열흘의 여행으로 잠시 쉬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다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의 나로 돌아갔다.


서울에 가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 도시에서라면 조금은 더 잘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출발이라는 생각으로.

지방에서 살던 나는 부모님께 조심스레 말했다.

“서울에서 학원 다니고 싶어요.”


큰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을 꺼내는 데는 괜히 용기가 필요했다. 부모님은 잠시 고민하다 허락해 주셨다. 아마도 내가 받아오던 차가운 시선과 외로움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독학재수학원에 등록했지만 나는 입시생이라기보다 세상을 배우는 사람에 가까웠다. 입시 문제보다 서울의 삶이 더 궁금했다.

학원에는 형형색색의 삼선슬리퍼들이 모여있었다

언니오빠들과 학원 또는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서울 풍경이 좋았고,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혼자 롯데월드몰을 구경하러 다녔다. 그 낯선 도시에서 나에게 안정을 주는 시간이였다.


고모집에서 생활하는 건 많이 배려해 주시고 챙겨주셨음에도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조심스러움, 말하지 못한 감정들, 그리고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 같은 것들.

내가 선택한 길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날엔 괜히 돌아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빛나는 풍경과는 다르게 마음속은 자주 흔들렸다.




두 번째 수능. 수험표

두 번째 수능이 다가왔지만 그때의 나는 ‘성적’보다 ‘길’을 찾고 있었다. 서울 구경에 더 정신이 팔려 성적은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성적에 맞춰 마음에도 없는 선택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슨 일을 하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삶에서 무엇이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희망 학과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렇게 마지막에 남은 단어는 뜻밖에도, ‘간호학’이었다.


어릴 적 꿈꿨던 승무원처럼 화려하게 비행기를 타는 건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에서도 일할 수 있고, 누군가의 삶을 돕는 일이었고, 내가 어디로 가더라도 살아낼 수 있는 기술 같았다.

나는 거창한 꿈을 꾼 적은 없었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게 간호학과였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불안했지만 그 불안 덕분에 오히려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어떤 날은 자신감이 넘쳤고, 어떤 날은 “나는 왜 이렇게 살까” 하며 혼자 울기도 했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아 그 과정은 더욱 외로웠지만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매일 기도했다.


"결국엔 잘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마침내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간호학과에 가보자.”

그게 나의 두 번째 시작이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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