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아메리칸 노츠』와 케이트 켈러 — 한 권

찰스 디킨스 『아메리칸 노츠』와 케이트 켈러 — 한 권의 책이 열어 준 교육의 길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헬렌 애덤스 켈러: 1880–1968)의 삶을 이야기할 때 흔히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출발점에는 한 어머니의 탐색과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찰스 디킨스: 1812–1870)의 『아메리칸 노츠(American Notes아메리칸 노츠)』이다.


먼저 이 책이 어떤 배경에서 쓰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찰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였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데이비드 코퍼필드)』 등의 작품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그는 1842년 미국을 방문한다.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었고, 미국 독자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디킨스는 약 다섯 달 동안 미국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병원, 감옥, 학교 같은 사회 시설을 직접 둘러보았다.


이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한 책이 바로 『아메리칸 노츠』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의 제도와 풍경을 관찰한 기록이었다.


디킨스가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 그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교육 기관을 찾아간다. 바로 퍼킨스 맹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퍼킨스 스쿨 포 더 블라인드: 시각장애인을 교육하는 학교)였다. 이 학교는 당시 시각장애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디킨스는 한 특별한 학생을 만나게 된다. 로라 브리지먼(Laura Bridgman로라 브리지먼: 1829–1889)이었다.


브리지먼은 어린 시절 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은 농맹(聾盲) 소녀였다. 그러나 퍼킨스 맹학교의 교사 사무엘 그리들리 하우(Samuel Gridley Howe사무엘 그리들리 하우: 1801–1876)의 지도 아래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하우는 촉각을 이용하여 언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시도하였고, 브리지먼은 손으로 글자를 느끼며 사물과 단어의 관계를 배우게 되었다.


디킨스는 이 교육 장면을 직접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브리지먼이 손으로 글자를 읽고 쓰며 교사와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아메리칸 노츠』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농맹 상태의 아이가 교육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사고를 확장해 가는 과정은 디킨스에게 인간 정신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이 기록은 이후 널리 읽히게 되었고 농맹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미국 남부 앨라배마 터스컴비아(Tuscumbia)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가 바로 헬렌 켈러였다.


헬렌은 생후 약 열아홉 달 무렵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시각과 청각을 잃게 된다. 말을 배우기 전의 나이였기 때문에 그녀는 언어를 습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의사 표현은 몸짓과 소리로 대신되었고, 의사가 통하지 않을 때는 격렬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상황 속에서 어머니 케이트 애덤스 켈러(Kate Adams Keller케이트 애덤스 켈러: 1856–1921)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느끼고 있었다. 헬렌은 사물을 만지고 기억하며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즉 아이의 지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소통할 방법이 없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케이트는 교육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읽게 된 책이 바로 찰스 디킨스의 『아메리칸 노츠』였다.


이 책 속에서 케이트는 로라 브리지먼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농맹 상태의 아이가 교육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지식을 넓혀 간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이자 희망이었다. 바로 그 순간 케이트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된다.


헬렌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 확신은 곧 행동으로 이어진다. 케이트는 남편 아서 켈러(Arthur Henley Keller아서 헨리 켈러: 1836–1896)를 설득하여 교육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각장애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1847–1922)을 만나게 된다.


벨은 헬렌을 살펴본 뒤 퍼킨스 맹학교에 연락해 보라고 조언한다. 이 권유를 통해 케이트는 퍼킨스 맹학교와 연결되고, 그곳의 교사 앤 설리번(Anne Mansfield Sullivan앤 맨스필드 설리번: 1866–1936)이 헬렌의 가정으로 오게 된다.


헬렌 켈러 이야기는 종종 한 교사와 한 아이의 이야기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문을 처음 연 것은 한 어머니가 책 속에서 발견한 작은 단서였다.


찰스 디킨스의 여행 기록 속 한 장면이 한 어머니에게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그 가능성을 붙잡은 탐색이 결국 헬렌 켈러의 삶을 바꾸는 길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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