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이 헬렌과 일상을 함께 세우기까지

설리번이 헬렌과 일상을 함께 세우기까지—


앞서의 배경, 곧 케이트 켈러(Kate Adams Keller 1856–1921)의 탐색, 알렉산더 그래험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의 조언, 퍼킨스 맹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퍼킨스 스쿨 포 더 블라인드: 퍼킨스 맹학교)의 연결 과정은 이미 충분히 다루어졌다. 여기서는 그 전사를 전제로 하고, 앤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36)이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와 실제로 만나 일상적인 관계를 맺어 가기까지의 과정에만 집중해 본다.


출발점은 1887년 3월 3일이다. 헬렌 켈러는 자서전 The Story of My Life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나의 삶 이야기에서 이 날을 이렇게 적었다.

The most important day I remember in all my life is the one on which my teacher Anne Mansfield Sullivan came to me더 모스트 임포턴트 데이 아이 리멤버 인 올 마이 라이프 이즈 더 원 온 위치 마이 티처 앤 맨스필드 설리번 케임 투 미: 내 삶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날은 나의 스승 앤 설리번이 나에게 온 날이다

이 문장은 훗날의 회고이지만, 동시에 그 만남의 무게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다.


그러나 도착 첫날부터 교육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일곱 살의 헬렌은 가족 안에서 몇 가지 몸짓과 촉각 습관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지만, 언어 체계도 없었고 생활 규율도 단단히 서 있지 않은 상태였다. 가족은 헬렌을 사랑했으나, 그 사랑은 오랫동안 아이의 요구를 바로 들어주는 쪽으로 흘러 있었다. 설리번이 보기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단어 이전에 생활의 질서였다. 실제로 설리번이 퍼킨스 맹학교 교장 마이클 애너그노스(Michael Anagnos 1849–1906)에게 보낸 편지들, 곧 Sullivan–Anagnos letters설리번–애너그노스 서신을 보면, 그녀는 헬렌의 고집과 충동, 가족의 과잉 배려, 그리고 교육을 위해 먼저 세워야 할 규율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설리번은 곧 한 가지를 깨달았다. 헬렌을 가르치려면 단지 손바닥에 철자를 써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이와 함께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잠들고, 함께 규칙을 지키는 생활 전체가 교육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설리번은 켈러 부모에게 과감한 요청을 한다. 헬렌을 잠시 가족의 즉각적인 보호와 개입에서 떼어 놓고, 자신과만 생활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헬렌 교육의 첫 관문은 교사의 재능만이 아니라, 그 재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부모의 결단에 있었다.


켈러 부모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본채 가까이에 있던 작은 별채, 곧 정원 쪽 별채를 설리번과 헬렌에게 내주었다. 이 공간 분리는 단순한 편의 조치가 아니었다. 헬렌이 가족의 손짓과 익숙한 버릇으로 돌아가지 않고, 설리번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려는 교육적 배려였다. 헬렌은 그 별채에서 설리번과 먹고 자고 움직이며, 처음으로 한 사람의 교사와 하루의 리듬을 함께 배우기 시작한다.


이 별채 생활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식사 예절과 자기 통제였다. 둘째, 같은 사물에 같은 철자가 대응된다는 반복 경험이었다. 셋째, 교사와 아이 사이의 신뢰 형성이었다. 설리번은 헬렌이 식탁에서 남의 접시를 함부로 더듬고 손으로 집어 먹던 습관부터 바로잡으려 했다. 이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헬렌은 강하게 저항했고, 설리번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속 일관성이었다. 오늘은 허용되고 내일은 금지되는 방식으로는 헬렌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설리번은 작은 일마다 같은 기준을 적용했고, 헬렌은 그 반복 속에서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사는 질서를 몸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 설리번은 헬렌의 손바닥에 끊임없이 철자를 써 주었다. 인형, 머그잔, 빵, 물, 인형 옷, 모자 같은 생활 사물이 모두 교육 재료가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헬렌은 철자의 움직임과 사물 자체가 연결된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헬렌은 손바닥의 움직임을 단순한 장난으로 여기지 않고, 설리번이 반복해서 같은 것을 하려 한다는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곧, 의미는 아직 모르되 관계는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에서 설리번과 헬렌의 관계는 단번에 스승과 제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낯선 어른과 격렬한 아이의 대치에 가까웠고, 그다음에는 생활을 함께하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되었으며, 다시 그 위에서 조금씩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가 세워졌다. 말하자면 설리번은 먼저 헬렌의 선생이 되기보다, 헬렌과 하루를 함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바로 그 점에서 별채 생활은 결정적이었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1887년 4월 5일 물 펌프 앞의 사건이 가능해졌다. 많은 사람은 W-A-T-E-R워터: 물의 순간만 기억하지만, 실제로 그 한순간을 떠받친 것은 그 이전 한 달 남짓 이어진 공간의 분리, 부모의 양보, 생활 규율의 확립, 반복 훈련, 신뢰 형성이었다. 곧, 물 펌프 앞의 깨달음은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함께 마련한 생활환경 속에서 비로소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헬렌 켈러 이야기를 사실과 기록 위에서 다시 읽으면, 설리번의 위대함은 단지 명문장을 가르친 데 있지 않다. 그녀는 먼저 한 아이와 같이 살 수 있는 질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켈러 부모의 위대함도 거기에 있다. 그들은 사랑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그 사랑이 교육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섰다. 헬렌의 세계가 열린 것은 바로 그 물러섬과 맡김, 그리고 한 달 가까운 생활의 훈련 위에서였다.

작가의 이전글헬렌 켈러 부모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