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비치는 우리 사회의 속살

말 한마디에 비치는 우리 사회의 속살


기사 속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뱉은 말을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단순했다.


“그게 할 얘기냐.”


이 반응은 논리의 결과라기보다

오랜 삶 속에서 쌓인 말의 감각에 가까운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말을 한다.

기대 속에서 말하고, 분위기 속에서 말하고, 때로는 흥에 겨워 과장된 말도 한다.


그리고 현실의 삶은 그 말을 언제나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고 조건이 달라지며 사람의 능력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말을 다 지키며 살 수 있느냐.”


현실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자리다.


사적인 자리에서라면

그 말은 웃으며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그것도 공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인의 말은 개인의 말이 아니다.

그 말은 곧 공적 신뢰의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그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감독이다.


한 작품이 천만 관객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한 흥행 기록이 아니다.


그 작품은 이미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감정 속에 들어간 문화적 사건이 된다.

그래서 그 작품을 만든 감독 역시 자연스럽게 공적 인물의 자리에 서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나오는 말 한마디는

단순한 농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말과 태도도 함께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말은

논리 이전에 먼저 이렇게 들린다.


“그 말은 그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어쩌면 한 사람의 발언을 넘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비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지도층의 말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약속은 쉽게 나오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그래서 어떤 말은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 말 뒤에 비치는 우리 사회의 속살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든 말을 다 지키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말의 책임까지 가벼워질 수는 없다.


말은 입에서 나오지만

그 말의 무게는 그 말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이 짧은 문장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사람은 모든 말을 다 지키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말의 무게까지 가볍게 말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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