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의 코를 꿰다 — 한 아이의 외침이 집안을 바꾸다

계모의 코를 꿰다 — 한 아이의 외침이 집안을 바꾸다


조주청(趙周淸)의 「사랑방 이야기」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가 담겨 있다. 큰 사건이나 거창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뜻밖의 순간이 어떻게 흐름을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계모의 코를 꿰다〉라는 이야기도 그런 결을 지닌다.


옛날 천석꾼 부잣집에 강 초시가 있었다. 초시(初試)는 과거 시험의 첫 단계에만 합격하고 최종 급제는 하지 못한 선비를 가리킨다. 그의 아버지 강 진사는 평생 외아들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러나 그 기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강 초시는 빈소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통곡했다. 평생 자신에게 걸었던 아버지의 기대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자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집 안에 쌓여 있던 책을 마당에 꺼내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그 뒤로는 주막을 떠돌며 술에 빠져 살았다.


집안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조신하던 부인은 매를 맞기 일쑤였고, 일곱 살 난 딸 명진이도 아버지 곁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노름판에서 논문서가 날아가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기생 설중매와 첩살림까지 차렸다.


어느 날 집에 들른 강 초시가 또다시 논문서를 가지러 하자 부인 민씨가 울며 막았다. 그는 아내를 짓밟듯이 때렸다. 어린 명진이가 울며 아버지 다리를 붙잡자 아이마저 걷어차 처마 밑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날 이후 부인 민씨는 집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강 초시는 기생 설중매를 집 안방에 들였다.


일곱 살 명진이의 삶은 그날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안방에서 어머니 곁에 자던 아이는 골방으로 쫓겨났다. 밤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다가 눈이 퉁퉁 부은 채 아침을 맞았다.


계모의 구박이 시작되었다.


“안방 이불 정돈해라.”

“마루 닦아라.”

“신발 씻어라.”


집안의 귀여움을 받던 아이는 어느새 하녀처럼 부려졌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명진이가 “우리 엄마는요?” 하고 묻으면 그는 계모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엄마 여기 있잖아.”


몇 달 사이 아이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얼굴은 더러워지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손은 거칠어졌다. 하녀들마저 아이를 발가락의 때처럼 여기며 물을 길어 오라, 불을 지피라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지친 명진이는 골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밤중에 깨어 통시에 갔다. 그때 뒷담 쪽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명진이는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시커먼 사람 형체 하나가 두리번거리더니 고양이 걸음으로 마루에 올라 안방으로 사라졌다.


아이는 겁에 질려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뒤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헉헉, 학학, 나 죽어, 나 죽어!”


그 순간이었다.


명진이는 다듬잇방망이를 움켜쥐고 안방 문을 벌컥 열며 뛰어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우리 어머니 죽이는 놈이 누구야!”


벌거벗은 채 계모 위에 올라타 있던 번들거리는 중의 머리를 방망이로 내리쳤다.


중은 옷을 옆구리에 끼고 혼비백산 도망쳤다.


이 사건 이후 집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안방 문을 꼭 닫고 숨어 있던 계모가 사흘 뒤에 나왔다. 얼굴에는 전에 없던 웃음이 떠 있었다.


그녀는 명진이를 불러 비단 치마저고리를 입혀 주며 말했다.


“이거 짓는 데 삼일 걸렸다. 아버지한테 도둑이 들어왔다고 말하지 말아라.”


명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명진이는 다시 공주처럼 대접받았다.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한 아이의 외침이 집안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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