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스스로를 부르는 순간
헬렌 켈러와 설리번 ― 교육이 성립되는 조건 제Ⅸ편 자아의 자리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를 부르는 순간
이름이 생기고, 생각이 자라나고, 관계가 이어졌다.
세계는 넓어졌고, 타인은 다가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사물과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모든 경험이 하나로 모이는 중심, 곧 ‘나’라는 자리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사물은 손으로 느낄 수 있었고,
사람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어 붙이고, 의미로 묶는 자리는 따로 있었다.
앤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36)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름을 가르치고, 생각을 열고, 관계를 이어 준 그다음,
이제는 방향을 바꾸었다.
밖이 아니라, 안으로.
손 위에 새겨지는 글자는 더 이상 사물이나 타인을 향하지 않았다.
그 방향이 스스로를 향하기 시작했다.
너.
그리고 나.
이 단순한 구분은 단순한 언어의 구분이 아니었다.
세계의 중심이 이동하는 사건이었다.
이 과정은 Keller, H., 1903, The Story of My Life나의 삶 이야기, Doubleday, Page & Company 및 Herrmann, D., 1998, Helen Keller: A Life헬렌 켈러 생애, University of Chicago Press의 서술에 근거한다.
자아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각이 쌓이고, 이름이 붙고, 생각이 열리고, 관계가 이어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
헬렌 켈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비추기 시작했다.
손을 잡는 순간,
응답을 기다리는 순간,
그 사이에서 자신을 마주했다.
나는 느끼는 존재이고,
나는 생각하는 존재이며,
나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라는 사실.
여기서 하나의 긴장이 생긴다.
자아는 안에 있는가,
아니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가.
설리번의 교육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자아는 안에 있으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미 있는 것이지만,
스스로는 보이지 않는다.
타인을 통해 비추어질 때,
비로소 스스로를 인식한다.
이 인식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구분, 반복되는 경험,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 조금씩 또렷해진다.
설리번은 지식을 쌓지 않았다.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
스스로를 부를 수 있는 자리.
이것이 교육의 마지막 조건이다.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행동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는 일이다.
자아는 배움의 끝이 아니다.
배움이 모이고, 다시 시작되는 중심이다.
감각에서 시작된 배움은
언어로 열리고,
생각으로 깊어지고,
관계로 넓어졌다가,
다시 자아로 돌아온다.
그리고 여기서 방향이 결정된다.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도 다르지 않다.
많이 아는 것, 깊이 생각하는 것, 관계를 잘 맺는 것,
그 모든 것 위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을 때,
그 질문 앞에서 물러서지 않을 때,
그때 배움은 단순한 축적을 넘어
삶의 방향이 된다.
교육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은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다.
그때 비로소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