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로 서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 교육이 성립되는 조건 제X편 자유의 시작
―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로 서다
이름이 열리고, 생각이 깊어지고, 관계가 이어지고, 자아가 섰다.
배움은 흩어지지 않고 한 점으로 모인다.
그 자리에서 다음이 열린다.
자유다.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더 이상 배우는 데 머물지 않았다.
이해한 것을 넘어, 스스로 선택하는 자리에 섰다.
그의 자전 기록 The Story of My Life나의 삶 이야기 (Doubleday, 1903)는
배움이 이해를 지나 삶의 판단으로 건너가는 순간을 담담히 남긴다.
앤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36)은 그 앞에서 물러섰다.
이끌지 않았고, 대신 결정하지 않았다.
곁에 머물렀다.
이 거리에서 교육의 형식이 아니라 본질이 드러난다.
가르침은 방향을 밝힐 뿐, 선택을 대신하지 못한다.
배움은 길을 열 뿐, 걸음을 대신하지 못한다.
전기 서술 Helen Keller: A Life헬렌 켈러 생애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는
그가 통제자가 아니라, 선택이 가능해지는 자리를 끝까지 지킨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그러나 선택은 비어 있는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해에서,
사유에서,
자아 인식에서 나온다.
자유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벗어남이다.
타인의 지시와 억압에서 풀려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세움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을 끝까지 감당하는 일이다.
벗어나지 못하면 억눌리고,
세우지 못하면 흩어진다.
헬렌 켈러의 배움은 이 둘을 함께 향했다.
따르지 않고, 판단했다.
주어진 것을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고르기 시작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
이때 인간은 따르는 존재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바뀐다.
설리번의 자리는 여기서 완성된다.
지식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지키는 사람이다.
붙잡지 않으면서 떠나지 않고,
놓아주면서 버리지 않는 자리.
그 사이에서 자유는 자란다.
감각에서 시작된 배움은
언어로 열리고,
생각으로 깊어지고,
관계로 넓어지고,
자아로 모였다가,
자유로 나아간다.
그리고 여기서 삶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의 자리도 다르지 않다.
앎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유만으로도 모자란다.
관계만으로도 다하지 못한다.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견뎌야 한다.
그때 사람은 선다.
교육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가벼운 풀림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끝까지 지는 힘이다.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선택을 끝까지 사는 일이다.
그때 배움은 지식을 넘고,
사람은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교육은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