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지능의 이름들』 제6편 교육·가정·유아 환

―‘인공지능’이 불리는 방식과 규범

『인공지능과 지능의 이름들』 제6편 교육·가정·유아 환경에서 ‘인공지능’이 불리는 방식과 규범


인공지능은 연구실에서 태어났지만, 일상에서 길러진다.

학교, 가정, 유아 환경은 기술이 처음 ‘사람의 말’로 불리는 자리다. 이때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는 이후의 규범을 결정한다.


교육 현장에서 인공지능은 대체로 약칭으로 먼저 들어온다. ‘AI’, ‘에이아이’라는 표기는 빠르고 편리하다. 그러나 이 약칭은 기능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보지만,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는 배우지 못한 채 접한다. 이름이 설명을 생략할수록 규범은 뒤로 밀린다.


가정에서는 상황이 더 단순해진다. 인공지능은 ‘편리한 것’으로 소개된다. 숙제를 돕고, 질문에 답하고, 영상을 추천하는 도구다. 여기서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기술 명칭이 아니라 생활 편의의 표식이 된다. 이때 책임의 주체는 흐려진다. 누가 판단했는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유아 환경에서는 문제가 더 선명해진다. 아이 앞에서 인공지능은 설명되지 않는다. 말하는 장난감, 반응하는 화면, 스스로 움직이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름은 곧 성격이 된다. ‘똑똑한 친구’, ‘알아서 해주는 것’이라는 표현은 지능을 능력으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과정과 책임은 보이지 않는다.


각 언어권의 선택은 이 지점에서 갈린다.

‘知(알 지)’를 택한 환경은 이해와 학습을 강조하고, ‘智(슬기 지)’를 택한 환경은 판단과 처리의 능력을 앞세운다. 영어의 intelligence인텔리젠스는 문제 해결과 수행 능력을 동시에 호출한다. 이름의 차이는 교육 목표의 차이로 이어진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아이에게 인공지능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이름을 줄일 것인가, 풀어 말할 것인가. 편의를 앞설 것인가, 설명을 남길 것인가. 이 선택이 곧 규범이 된다.


인공지능은 아이에게 처음 불린 이름 그대로 자란다.

그래서 교육·가정·유아 환경에서의 명명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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