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부장님(1)

by 밍갱


때는 2006년,

첫해 부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우선 부장님의 외모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미란다 느낌이다.

앞으로 미란다 부장님이라 불러야겠다 ㅎ



외모가 세련되면서 매섭고, 무서운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입술도 새빨갛게 칠하고 다니셨고, 옷도 항상 멋지게 갖춰 입 으시면서 그 나이에 소화하기 힘든 빨간 베레모를 쓰시기도 했다.
나이는 50초반? 중반? 그쯤으로 추정된다.
물론 나는 앤 해서웨이는 아니었다 ㅋㅋ

우리 동학년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1반 미란다 부장님,
2반 부장을 보조하는 4-5년 차 똘똘이샘,
3반 신규교사 나,
4반 아내분이 목욕탕을 운영하시던 부자 남자 샘 50대라 추측,
5반 30 초반의 아기 엄마 샘,
6반 발령 동기이자 미래의 나의 새언니 ..우린 힘듦을 함께하며 가까워졌다 ㅋㅋ


미란다 부장님은 지금 생각하면 통제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자기 반 아이들도 꼼짝달싹 못하게 하셨고, 특히 신규였던 나와 새언니에게도 유독 그러셨다. 그중에서도 만만했던 나에게 더 그랬던 것 같다.

밤 9시에 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불쑥 오곤 했다.
"선생님! 주간 학습 앞장에 교과서 쪽수가 틀렸어."
"아.. 네 내일 수정하겠습니다."
"이런 거 정확히 신경 써야지."

그때는 원래 이런 건 줄 알았다. 처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곳을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 달라진다.
난 학교가 이런 곳인 줄 알았다. 실수하면 안 되는 곳. 정말 무서운 부장님이 존재하는 곳.

나중에 보니 정말 저 부장님이 특이하신 분이었다.

신규가 첫 월급을 받으면 떡을 사야 한다고 하셔서 동기들끼리 돈을 모아 전체 학교에 떡을 돌렸다.
동 학년에게도 한 번씩 먹을 걸 사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는 격주로 토요일 근무가 있었는데, 어느 토요일 근무 날 짜장면, 탕수육을 시켰다.
본인은 그날 약속이 있어서 못 먹어서 그러셨는지.
"하여튼 돈을 써도 센스 있게 쓰지를 못해."(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느낌이었다.)라는 이상한 말을 남겨서 사람 마음을 쪼그라지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학년 분위기가 좋았겠는가.
하루는 미란다 부장님과 4반 남자샘이 큰 소리로 싸우셨다. 남자샘은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마침 그날은 3반 아기엄마샘 생일이었고 총무였던 나는 심부름으로 케이크를 사 왔었다.
남자샘이 나가자 미란다 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 소름.....

그 싸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기계처럼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00 샘 생일 축하합니다."를 부르고
짝짝짝! 박수를 치며 케이크를 먹어야 했다.
이 상황이 과연 이해가 가는가?
와. 지금 생각하니 이건 정말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약간 기괴?

그때는 학년에서 밖으로 종종 나갔었다. 지금의 문화연수 같은 거였나 보다.
미란다 부장님의 제안(이라 쓰고 강요라 말하겠다)으로 다 같이 예술의 전당에 <맘마미아> 공연을 보러 갔다.
신규에게는 너무 큰 거금의 돈을 이렇게 즐겁지 않은 구성원들과 뮤지컬을 보는데 쓰다니..... 우울했다.

한 번은 자기가 다니는 미용실에 나를 데려간 적도 있다. 주말에 따로 만나서. 거길 따라간 나도 등신 같긴 하다. 나 진짜 만만이였구나. 머리는 마음에 들었나요? 아......... 말하지 않겠다. ㅎㅎㅎ


부장님은 왜 이토록 동학년에 집착하셨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나와 새언니에게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다
"내가 물부장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난 물부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고, 무시한 적도 없고 그냥 부장님이 무서웠을 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부장님은 나이는 50대셨지만 총경력은 많지 않으셨다. 중간에 오래오래 쉬시다가 어떤 루트로인지 다시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신 분이었다. 그게 본인의 자격지심이셨을까? 신규들에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셨나? 그 방어기제로 더 강력함을 발산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우리 학교에는 '여왕벌 샘'들이 각 학년의 학년부장을 하시며 엄청난 세력을 갖고 계셨는데,
본인들끼리 친하게 지내다가도 뒤에서는 엄청 험담하셨다.

미란다 부장님과도 겉으론 친하게 지내면서도 나를 만나면
"너희 부장 성격 장난 아니지?."
"그 집 남편이 파산해서 월급 차압 당한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서 저렇게 예민하고 날카로우신 거가 싶기도 하며 이해가 아주 살짝 되기도 했지만,

싫었다.


우리 반 애들 앞에서 내가 혼난 건 너무나 다반사.
수업 중 문을 벌컥 열고 소리치셨던 적도 있고.
학년 전체가 강당에 모였을 때도
'3반! 애들 조용히 좀 시켜!"라고 외치셨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정말 내가 무능한 교사인가 싶어지곤 했다. 이게 가스라이팅이었나? 헛.

그러다 그 다음해, 다른 부장님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 학교가 꼭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었구나.' 따뜻한 선배들이 존재하더라.
하지만 다른 학년이 되어도, 복도에서 미란다 부장님을 마주치는 건 여전히 공포였다. 멀리서 보아면 재빨리 도망쳐 다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저 경험도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겠지. 배운 게 있었겠지.



첫해가 바닥이라, 그 이후 만난 부장님들은 대부분 너무나 ‘감사한 존재’였다.



저분이 나의 가족이 아닌 것에 감사,
그 후로 다시는 어떤 학교에서도 만나지 않음에 감사.
저런 분을 내 인생에서 1회로 끝낼 수 있었음에 감사.
' 나는 좋은 부장이 되어야겠다. 신규들을 예뻐해 줘야지.' 다짐을 하게 해 준 데 감사.
그리고 지금 함께하는 따뜻한 부장님에게 감사.

감사할 일 투성이다.

미란다 부장님,
언제가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 왜 그러셨는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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