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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Mar 28. 2024

좋은 시간, 나쁜 여자(19)

19. 육체와 영혼

뜨거운 육체의 결합이 분리되자 정호의 이성도 조금씩 돌아왔다. 정호는 옆으로 나란히 누워 마주 보고 있는 현경의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말했다.     


“현경아, 아니, 지영아 어떻게 된 건지 다시 말해봐.” 

“내가 차에 치여서 극심한 고통을 느낄 때 갑자기 한줄기 강한 불빛이 나를 비췄어. 얼마나 밝던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볼 수 없었어. 그런데 신기하게 통증을 못 느끼더라고. 고통이 사라진 거야. 내 몸이 엄청 가벼워지더니 공중으로 떠올랐어. 마치 빛이 나를 들어 올린 것 같았어.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내가 누워있더라고. 피투성이를 한 내 모습을 보고 기겁했지. 의사들이 살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어. 그런데 옆 침대에 어린 소녀가 누워있었는데….”     


지영은 갑자기 이 대목에서 말을 멈추고 흐느꼈다.     


“사실은, 사실은….”     


한참 말을 못 하고 흐느끼던 지영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후회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정호와의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는가? 내가 그런 여자였나! 딸의 몸을 빌려 딸의 아빠와 사랑을 나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영은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언젠가는 딸의 영혼이 돌아오면 현경의 육체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경의 육체에 들어있는 영혼은 자신뿐이라고 느껴졌다. 영혼은 영혼끼리 알아볼 수 있는데 현경의 영혼은 육체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어쩔 수 없어. 정호 씨가 현경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만 모르면….’     


“지영아, 괜찮아? 현경이 몸속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알겠어. 그럼 현경이 영혼은 어떻게 된 거야? 한 육체에 두 영혼이 같이 있을 수 있어?”

“가능해. 빙의라는 말 들어봤지? 그게 한 육체에 두 영혼이 들어가는 거야.”

“그럼 현경이 영혼이 나타나면 현경이가 되는 거고, 네 영혼이 나타나면 지영이가 되는 거야?”

“아니, 지금은 내 영혼만 육체를 지배하고 있어. 현경이 영혼은 어딘가에 있을 텐데 사고 충격으로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아. 깨어나지를 않네. 깨어나면 내 영혼과 충돌이 생기거든. 그럼 육체는 영혼이 지배하는 대로 움직여서 내가 되었다가 현경이가 되었다가 정신없는 거지. 어쨌든 지금은 내 영혼만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어.”

“그럼, 언젠가는 현경이 영혼이 육체를 다시 찾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지. 그런데 정호 씨는 내가 현경이 육체에 들어있는 게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육체를 보면 현경인데 말하는 사람을 보면 지영이고.”

“육체는 정신이 지배하는 법이야. 육체는 껍데기지. 다른 옷을 입었다고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아. 영혼이 지영이면 육체도 점점 지영이가 되는 거야. 예전의 내 모습 말고 지금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줘.”    

 

지영은 딸의 육체를 빌려, 딸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끔찍하리만큼 무서웠다. ‘아니야, 지금 정호 씨랑 육체를 마주하고 있는 건 나야. 지영이야. 현경이가 아니야. 그냥 나라고. 잠시라도 현경이 육체를 빌려서 내가 그토록 살아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게 된 거야. 이것도 어쩌면 하늘의 뜻이라고. 만약 내가 현경이 육체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었을 거야. 현경이 영혼이 다시 나타날 때 까지 만이라도 행복해지자. 지금껏 행복하게 살아 본 적이 없잖아.’ 지영은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했다.     

정호는 지영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했다. 지영을 끌어당겨 안았다. 울릉도에서 지영을 안았을 때가 떠올랐다.     


“지영이 맞네. 울릉도에서 널 안았을 때 그때, 네 숨결 하나하나가 느껴져. 다시 널 사랑할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현경, 아니 지영아.”

“그래. 괜찮아.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 지영아.”  

   

정호는 지영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지영은 정호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20년 전 울릉도에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이 다시 들었다.     


“정호 씨.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 이대로 영원히. 우리 둘만의 세계에 갇혀서 다시는 떨어지지 않게 말이야.”

“나도 그래.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은 기분이야. 어쩌면 난 지난 20년간 매일같이 널 기다렸는지도 몰라. 늘 행복하지 않은 한쪽에는 네가 자리 잡고 있었거든. 간절한 바람이 이렇게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아서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지영은 정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사랑하는 남자, 평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던 남자, 그 남자의 딸을 낳았고, 딸의 젊은 육체에 들어와 다시 시작하는 사랑. 발가벗은 두 육체가 다시 가까워지자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완벽하게 정호와 지영이로 합쳐졌다. 지영은 정호 위로 올라갔다. 정호가 손을 뻗어 지영의 가슴을 만졌다. 지영은 손가락으로 정호의 입술을 문질렀다. 정호가 지영의 손가락을 낚아채어 입술 안으로 넣어서 혀로 빨아들였다. 지영은 정호의 입술에 잠시 맡겨놓은 손가락을 다시 정호의 가슴으로 옮겨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이 유두를 간지럽혔다.     


“지영아.”

“안 돼. 조금만 기다려. 아직 부족해.”

“난 지금 준비됐어.”

“싫어, 당신을 더 만지고 싶단 말이야.”     


지영은 정호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난 죽을 수도 없어.”

“그래.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지는 못하지.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운명이야. 너무 사랑해서 하늘이 주신 운명 말이야.”     


지영은 숨을 헐떡이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정호의 불기둥이 벌써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영은 입속에 미끄러지듯 불기둥을 집어삼켰다. 정호는 근육을 뒤틀며 가볍게 신음을 냈다. 또다시 육체의 향연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지영이 불기둥을 잡고 있을 때 정호는 손가락으로 지영의 안으로, 밖으로 두드리며 문질렀다. 그러더니 중지로 지영의 클리토리스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지영은 호흡이 빨라졌다.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에 ‘아악’ 하며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거야.”     


지영의 말에 정호는 불기둥을 지영의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지영의 몸속에서 허리를 돌리면서 헐떡이기 시작했다. 점점 고조되는 헐떡임의 리듬에 맞춰 지영은 높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으스러지도록 강하게 밀어붙이는 정호를 두 팔로 힘껏 끌어안았다. 드디어 도달한 오르가슴 속에서 눈은 광채가 났고 땀은 범벅이 되었다. 구름 위에서 아래로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짐과 동시에 강한 조임이 정호를 절정에 도달하게 했다. 따뜻한 액체가 뿜어져 나오면서 정호는 주문을 외듯이 지영의 이름을 불렀다.    

 

“지, 지, 지영아.”     


지영이도 그 말에 연신 사랑해를 신음하듯이 외쳤다. 둘의 소리는 공기를 뚫고 사방에 퍼졌고 소리는 합이 되어 사랑해가 되었다. 둘은 땀에 젖은 살갗을 미끄럽게 비비며 육체의 향연을 멈췄다.   

   

“지영아, 내가 너에게 질리는 날이 올까?”

“갑자기 그건 왜?”

“사랑도 시간이 지나고 습관처럼 되면 지금 같은 에너지를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나.”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미리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지만 자기랑 만들어가는 인생도 너무 기대되는걸. 그게 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해.”     


지영은 정호의 품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 땀에 젖은 현경의 육체 속에 지영이 아닌 또 다른 자아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현경의 영혼이 깨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큰일이다. 현경이가 깨어나고 있어. 내가 제 몸에 들어와서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안 돼, 아직은 안 돼. 조금만 더 기다려 현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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