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건사로서 깨달은 가능성이라는 절망
직원으로, 또 보호자로 동물병원을 오가고
동물병원 유튜브를 자주 보다 보니, 한 가지 절망을 알게 됐다.
달에 백만 원을 써도 살릴 수 없는 아이들에겐
달에 천만 원을 쓸 수 있는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사실.
1차 병원에서 더는 어렵다고 말하는 상황이라 해도,
2차, 3차 병원에 가면 ‘아직 해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남아 있다.
무조건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끝과 포기만 남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
하지만 달에 이백을 버는 사람에게
달에 천만 원의 병원비는
가능한 선택이 아니라, 확률이 0% 일이다.
그래서 그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리는 것 자체가 꽤나 절망스럽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절망을 수의테크니션으로서 일하면서 예습했다.
방관자 입장에서 보던 절망을 몸소 겪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디까지 무너질까.
마치 일정 수위를 유지해야 하는 독에
구멍이 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기분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독이 아니라
위아래가 뚫린 원통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최선이 될 수 없는 구조.
골인지점은 없고,
기권하는 것만이 멈추는 방법인 마라톤에서
나는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반려견에 죽음이 자연의 섭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돈의 한계로 결정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거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