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편하잖아, 아빠가 있으면

아이에게 들켜버린 나의 불편한 최선

by 물결

남편은 시댁과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의 성격은 참고 참다가 한번 터뜨리면 뒤돌아 보지 않고 선을 그어버리는 유형이다. 큰아이가 6개월 남짓 되었을 때, 남편은 시아버지의 말기 암 진단 소식을 듣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지방에 있는 시댁으로 갔다. 그는 아픈 시부모님의 간병과 집안일을 도우며 무거운 두 달 정도의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에 시누이와 크게 다툰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단 한통의 전화도 걸지 않았다.

정신 없이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와 일상을 버티던 나 역시 굳이 시댁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일상이 조금 안정되고 나서야 명절이나 생신 때 기프티콘을 보내며 조심스레 안부를 전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사진을 보내며 근황을 전하던 중, 어머님이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했다. 수술을 하게 되면 목소리가 오래도록 잘 안나올 거라고 그 전에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주말에 고된 육아를 홀로 하고 있었던 터라, '그럼 주말에 가서 어머님이랑 시누이랑 같이 육아를 해야겠다.' 하며 쉽게 생각하고 "제가 갈게요! " 냅다 대답했다. 그 날 남편에게 통보하듯 결정하고,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다음날 2살, 4살 아이 둘을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3박 4일로 갔었는데, 예민한 큰 애는 비행기 타는 것은 좋아했지만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더니, 도착 후 공항에 마중나온 고모를 만나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집에 갈래! 집에 갈래!" 를 외치며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더니, 둘째와 내가 거실에서 잠든 후에야 할머니의 맛사지를 받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어머님과 시누이는 둘째를 처음 만나 너무 반가워하셨고, 남편의 외삼촌가족까지 찾아와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마트도 가서 선물도 사고, 맛난 것도 사먹고, 키즈까페도 가며 4일을 보내고 집으로 왔다. 다신 안간다는 큰애에게 하루는 물었다. "할머니 집에 가기 싫어?" "응, 가기 싫어." "아빠랑 같이 가도 가기 싫어?"

그런데 예상 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빠랑 가면 갈거야." "왜? 엄마랑은 가기 싫고, 아빠랑 가면 같이 갈거야?"

4살 된 큰아이가 혀 짧은 소리로 "엄마가 편하잖아. 아빠가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웃고, 즐겁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불편했던 감정이 티가 났던 것일까? 애초에 내가 불편했던 건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주는 큰아이가 신기하면서도 묘하게 다가왔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숨김없이 읽어낸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관계를 잘 맺고,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여겨왔다. 하지만 아이의 이 한 마디는 나의 그런 '관계 전문가'라는 정체성에도 깊은 금이 가게 만들었다. 내가 웃으며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든 관계가, 사실은 나의 불안과 불편함을 감춘 '연기'였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피어났다. 가장 가까운 아이조차 나의 진심이 아닌 '불편한 가면'을 읽어냈는데, 그동안 내가 맺어온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지방에서의 3박 4일은 고되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시댁과의 연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평소에도 말수가 적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우리를 태우러 공항까지 와준 것이었지만, 극도의 직장 스트레스 때문인지 내가 기대했던 "고생했어", "나 대신 고마워" 같은 따뜻한 말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왜 저렇게까지 멀리 애쓰고 다녀왔지? 안 힘들었나. 난 너무 지쳤는데.' 하는 듯한 피로와 의아함이 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의 침묵과 그 표정은 그의 배려를 알면서도 나에게는 깊은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이후 작은 일에도 남편에게 서운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시댁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명분 아래, 사실은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 기대와 '내 의무를 다했다는' 안도감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최선을 다할 때는 상대의 반응이나 인정을 기대하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의 통찰과 남편의 지친 침묵을 통해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