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이라는 낯선 길.

선생님 너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

by 물결

우리 반 학생들은 학기 초 20명에서 시작해, 4명이 전학을 가고 다시 4명이 전학을 왔다. 본의 아니게 쉴 틈 없는 전입생들의 적응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어떤 친구는 낯선 환경에 삐딱하게 수업을 듣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원래 성격보다 얌전하게 숨죽이며 학교를 다녔다. 또 어떤 친구는 평소보다 센 말과 행동으로 무리수를 두었다가 분노한 학생들에게 한소리 듣고 울상을 짓기도 했다.

나는 이들의 '전학'이라는 변화를 그저 행정적인 절차로 보지 않았다. 그 아이들에게는 집도, 동네도, 그리고 알고 지내던 모든 친구 관계까지 전부 새로워지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고 혼란스러울까?


정체성을 지키려는 작은 몸짓

2주 전 전학 온 친구는 안경을 쓰고 머리가 긴 여학생이었다. 전입 전날 엄마와 언니와 함께 먼저 와서 교실 위치를 익히고 준비물을 꼼꼼히 적어갔다. 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슷한 인상착의의 다른 전입생 친구를 언급하며 자리를 알려주었다. "너랑 비슷하게 생긴 친구가 한 달 전에 전학 왔어. 둘이 같이 앉으면 되겠다."

그러나 다음 날 등교한 여학생은 일부러 머리를 풀고 나타났다. 나중에 상담 전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원래 머리를 묶고 다니는데, 다른 친구와 비슷해 보인다고 안 묶더라고요."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별점을 두려 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생김새나 차림에 크게 지적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 자체로도 빛이 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좀 더 예쁜 커트나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묶는 것을 추천해 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아이는 지금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으니까. (얼굴이 예쁜데 말그대로 산발이라 아쉽긴하다.)


또 다른 남학생의 경우도 있었다.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가족의 지병 악화로 급히 돌아온 케이스였다. 원래 유명한 장난꾸러기였지만 학교에 와서는 한참을 조용하게 지냈다. 이 친구는 마른 체형인데 항상 쫄바지(일명 레깅스)를 입고 다녔다. 2학기 들어서면서 10살 아이들에게 이성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있어 쫄바지 입지 말라고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는 사이 사건이 터졌다. 친한 친구와 장난치다가 소중한 부위를 가격 당한 것이다.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사과문을 쓰는 등 난리를 치른 후에야 나는 어머니와 상의하여 '레깅스 금지령'을 내렸다. '신체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뒤로 아이는 일반 바지를 잘 입고 다닌다. 정체성과 편안함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이에게, 어쩌면 이 사건은 적절한 외부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것인지도 몰랐다.


선생님의 적응 기간: 넌 일주일, 난 매년/ 매 학기

아이들의 적응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나는 관계를 잘 맺고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사실은 '나의 불안과 불편함을 감춘 '노력하는 가면'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아이의 한 마디(시댁행 에피소드)로 깨달았다. 이제 아이들의 적응기를 보며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도시로 전학을 갔는데, 이전 학교에서 소위 '짱'을 먹다가(?) 가서 그런지 상실감이 무척 컸다. 바둑판 같은 동네에서 동생과 길을 헤메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기간제 교사이다. 빠르면 6개월, 오래 다니면 1년마다 학교를 바꿔야 한다. 짐을 옮겨야 하고, 새로운 학교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고, 매번 바뀌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오죽하랴 싶어서, 전학 온 지 일주일 된 친구에게 물어봤다. "이전 학교 생각 그립지?" "네. 다시 가고 싶어요. 친구들도 보고 싶고." "선생님도 학교 옮길 때마다 힘들더라. 적응하려면 최소 한두 달은 걸리는데, 넌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난 거잖아. 이 정도면 너무 훌륭해."

아이는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살풋 웃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배울 점이 많다. 아이들은 불안을 숨기지 않고,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자신을 방어하는 순수한 본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교사인 나 역시 그 아이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학교의 전입생'으로서 매번 적응하고 버텨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일주일'을 칭찬해주었지만, 사실 나는 매년 3월마다 또는 학기마다 그 적응을 새로 시작하는 중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작은 미소는 매번 나를 일깨운다.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도, 스스로를 지키는 작은 몸짓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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