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짝꿍 선생님께 보내지 못한 편지

잃고나서 배운 것들

by 물결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서른도 되기 전, 스물넷의 풋풋한 첫 발령 교사. 작은 학교에서 5학년을 맡았던 저와, 6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
동학년이나 다름없었던 우리는 수학여행 사전 답사부터 강원도 여행까지, 늘 ‘짝꿍’처럼 함께 움직였습니다. 활달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선생님의 모습에 저는 금방 마음을 열었고, 존경심까지 품게 되었어요. 같은 종교라는 공통점, 그리고 운명처럼 선생님의 둘째를 제가 맡게 된 인연까지… 저에겐 참 특별한 시절이었습니다.

긴 연애를 끝내고 힘들어하던 저에게, 선생님은 유머 섞인 위로를 건네며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셨죠.


“자기야, 우리 남편 없을 땐 내가 마트에서 물건 번쩍 들어. 근데 남편 있으면 연약한 척 좀 해야지. 애들이 ‘엄마 왜 그래?’ 하며 웃는다니까. 하하.”

“사람이 안정된 게 중요해. 차분한 사람 만나. 그게 오래 가.”

“나 혼자 2박 3일만 여행가고 싶다. 집안일이 많아서 혼자 있는 시간이 귀하네, 진짜.”


익살스럽게 말하셨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안엔 삶의 지혜와 사랑의 방식이 녹아 있었어요.


기억나세요?
수학여행 야식으로 치킨을 시켰을 때, 기름진 부위를 좋아하는 저와 퍽퍽살을 즐기던 선생님.
그게 괜히 웃겨서, “우리 계속 같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낄낄거리며 말하던 저에게 선생님은 눈웃음을 지어주셨죠. 그 미소가 참 씩씩하고 따뜻했습니다.

그때 저는 학교를 떠나 사업을 시작했고,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서 교무부장으로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셨죠. 어느 날,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야, 기간제 해줄 수 있어? 사람이 너무 안 구해져서…”


평소와 달리 기운 없는 목소리였는데, 저는 일에 쫓겨 마음의 여유 없이 죄송하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거운 부탁 뒤에 숨어 있던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늘 자상하던 선생님의 남편분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고, 며칠 뒤 선생님마저 회식 후 귀가 중 차 안에서 쓰러지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죄책감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며칠 뒤, 결국 부고 소식이 들렸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슬픔에 잠긴 선생님의 딸들,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교감 선생님의 침통한 얼굴, 그리고 저에게 소식을 전해준 또 다른 선생님의 울음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로 만났어야 했는데…”
교감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죠.
한 학교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교무부장, 멋진 동료, 사랑받던 가족을 잃은 모두의 슬픔을 마주하고 있자니,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왜 선생님이 “2박 3일만 혼자 있고 싶다”고 하셨는지,
왜 가끔 연약한 척하면서라도 잠시 쉬려 했는지,
안정된 남편을 만나라고 조언하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가정을 지탱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네요.


이제 다시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 선생님 생각이 더 자주 납니다.
수업 고민도, 아이 이야기들도, 육아의 고단함도… 선생님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곁에 계셨다면, 아마 또 따뜻한 웃음으로 “자기야~”라고 불러주셨겠죠?


선생님.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더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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