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에서 기간제로 - 껍데기를 버리고 진심을 얻다.
나는 늘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에게 나와 내 동생의 성적표는 삶의 큰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범 답안 처럼 살다가 둘 다 공립 초등교사가 되었고, 번듯한 직장 덕분에 집안 형편도 차츰 좋아지려나?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5년간의 신규 교사 생활은 생각보다 작은 월급과 예측 가능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노력한 만큼 벌 수 있고 레버리지도 가능하다'는 사업 제안을 듣고 나는 심사숙고 한 뒤에 큰 용기를 내어 과감히 교단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8년의 노력 끝에 사업 실패라는 쓰디 쓴 경험을 안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결혼과 출산 후, 아이들을 굶길 수 없다는 절박한 각오 하나로 교단에 섰지만, 이번엔 기간제 교사라는 신분이었다.
솔직히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정규직 교사로서 승진 점수를 쌓으며 미래를 설계하던 때와는 달리, 기간제라는 꼬리표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대할 때조차 '내가 뭐라고 얘네를 혼내냐' 싶어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과거의 성취와 현재의 불안정한 신분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하지만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의 직함이 정규직인지 기간제인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1년 동안 같이 울고 웃었던 인연들은 졸업 후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그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말해줄 때마다 내 안의 '선생님'이라는 자아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올해 스승의 날이었다. 2년 전, 정말 말수가 없던 모범생 여학생 두 명이 중학생이 되어 나를 보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00 학교 맞으시죠?" 문제는 내가 그 학교에 근무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자꾸 학교를 바꾸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응, 맞아."라고 대답해버렸다.
결국 두 학생과 학부모님들은 지난 학교로 헛걸음을 했다가 뒤늦게 내가 옮긴 학교로 다시 운전해 찾아오셨다. 미안함과 식은땀이 범벅된 채 카네이션 화분을 받았고, 말수가 없는 아이들과 숨막히는 토크를 나눴다. 그리고 주차장에 계시던 어머님들을 찾아가 용기를 내어 모든 것을 고백했다.
"사실 제가 그만두고 사업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기간제교사에요. 학교를 자주 옮기다 보니 헷갈려서 헛걸음하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 어머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어머 그러셨어요? 선생님, 근데 너무 잘하시는 것 같아요. 계속 재능 기부 해주세요. 아이들을 위해서요."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자격지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정규직이니 기간제니 하는 '껍데기'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내가 가진 마음이 전부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기간제 교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임용고시 합격이나 대학원 졸업 같은 스펙을 끊임없이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방어했다.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위축될 때마다 과거의 성취를 소환해 자격지심을 감추려 했지만, 진짜 문제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가르칠 자격을 부여했다.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나는 교실 속 아이들과 연결된 담임 교사다. 이 내적인 확신이야말로, 아직도 실패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매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