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보물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준 선물

by 물결

주말의 독박 육아와 학교일로 체력이 고갈되고, 친정엄마와의 갈등으로 감정이 폭발했던 그 시기.

나는 나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완벽주의자도 아니면서, 항상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자책하는 밑바닥 엄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삶을 통제하려 들었던 이전의 나처럼, 육아도 나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육아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아이들은 내가 '인생 선생님'인지, '사업에 실패한 사람'인지, 혹은 '퉁퉁 부은 몸으로 출근하는 워킹맘'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눈을 마주치면 해맑게 웃고, 잠들기 전 "엄마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나를 껴안아준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이 생각 저생각에 심난한 마음이 들어 잠이 안 올 때면,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의 손과 발을 살며시 잡아본다. 그러면 수면제라도 먹은 듯이 마음이 편안해지며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물에 떠다니는 부평초마냥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은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이 생기고서야 단단하게 땅에 뿌리내렸다. 이 사랑은 사업을 할 때 만났던 고객과의 관계, 학교의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처럼 어떤 기대나 성과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의 약점이나 실패를 심판하지 않으며, 그저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뻐한다. 커져만 가던 수치심과 자책은 아이들의 사랑 앞에서 힘을 잃었다.


동그란 이마,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발그레한 뺨.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오는 큰 딸이 말했다. "엄마! 나 변기에 응아했어!" 또래보다 예민하고 겁이 많아 늦게 기저귀를 떼는 중이었기에 그 말이 참 반갑고 대견했다. 호들갑 떨며 과장되게 축하해주는 나를 향해 아이는 베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지이~" 이 순간, 내가 주는 사랑보다 어쩌면 더 순수하고 커다란 아이의 사랑, 즉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아이의 마음을 발견했다. 육아의 순간순간이 참을 인이요, 하기 싫음의 연속이지만 결국 버틸 수 있는 건 이 사랑의 되돌이표 덕분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가장 단순한 기쁨의 언어를 다시 배웠다. 처음 낳았을 때 핏덩이 같던 생명체는 너무 연약하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울음밖에 없더니, 눈을 뜨고, 뒤집고, 기어다니고, 이제는 걷다가 뛰고 춤도 춘다. 지금 5살, 3살 아이를 키우는 나는 때로 이 모습이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개의 지능은 5살 아이 수준이라던데), 하루하루 배워서 익히는 이 역동적인 성장의 모습이 대견하고 기껍다. 큰 아이가 "엄마, 비행기야!" 하며 하늘을 가리킬 때, 둘째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며 두 팔을 벌려 달려올 때, 나는 매일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삶이 주는 경이로움과 선물을 놓치지 않도록 강제로 눈을 뜨게 되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 그것이 육아가 나에게 준 최고의 힐링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극한의 고통 속에 몰아넣었지만, 동시에 그 고통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순수한 이유를 제공했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가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나 성공이 아닌, 이 작은 존재들과의 따뜻한 연결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야말로 내가 인생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가장 찬란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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