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넘어, 나 스스로의 '밑바닥'을 본 순간
나는 솔직히 내가 육아를 잘할 줄 알았다. 아이들을 가르쳐봤고, 타고난 순발력과 즉흥성, 낙천적인 성격까지 있으니 ‘난 잘 할 거야!’라고 막연하게 자신했다. 사업도 접고 학교로 돌아왔으니, 이제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현명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는 건 교실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울음과 보챔, 그리고 남편 없이 (남편은 식당에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집에 없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주말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 나의 하루는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치우고, 빨래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와 놀아주고, 산책을 나가는 루틴의 반복이었다.
나의 기본 인권은 저 멀리에 던져졌고, 입고, 먹고, 자고, 쉬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아이를 케어하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겨우 16개월 터울의 큰아이는 동생의 존재를 참을 수 없어 했고, 그 두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없어 나는 매일 쩔쩔 맸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보던 침착하고 현명한 엄마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나는 그냥 어떻게든 하루를 버티다가 감정이 폭발하기 일쑤였다.
‘내가 이렇게 참을성 없는 사람이었나?’ ‘왜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화를 낼까?’ 하는 자책만이 남았다. 주말엔 독박 육아, 주중엔 학교 업무와 퇴근 후 육아. 쉴 틈 없는 상황이 내 체력을 점점 고갈시켰다.
그리고 육아 도움을 한 번 받아볼까 하는 생각에, 10개월 정도 함께 살았던 친정엄마 같이 살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부딪히기 일쑤였다. 엄마는 24년 경력의 구몬 선생님이셔서 디테일한 것까지 잘 가르치고 지적하셨다. 그 지적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릴 때 엄마 밑에서 공부하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는데, 그걸 또 내 딸에게 하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자꾸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에게 늦은 갱년기가 오고, 나에겐 셋째가 잠깐 찾아오며 임신 호르몬이 터졌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임신한 금명이와 갱년기의 애순이의 갈등처럼 우리 모녀는 별것 아닌 것에도 싸웠다.
아이를 돌보기도, 엄마를 잘 모시지도 못하는 나는 학교에서 가장 힘든 반을 맡으면서 감정 기복이 더 커졌다. 주말에 육아하다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으아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육아는 내가 가진 순발력이나 **기지(機智)**로 해결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체력으로 버텨내야 하는 극한의 장기전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육아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라고 하셨구나. 내 몸과 마음의 밑바닥까지 탈탈 털리는 고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육아라는 극한의 거울 앞에서 비로소 진짜 '나'의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의 폭발은 결국 내가 마주해야 할 내면의 '밑바닥'이었다. 주말 독박 육아, 학교에서의 고된 업무,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와의 갈등까지 한꺼번에 터지면서, 나는 매일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또 얼마나 참을성이 없는 사람인지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울부짖던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잘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처절한 고갈의 경험은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육아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나는 완벽함을 버리고 진짜 나를 구출해내는 법, 즉 가장 인간적인 나의 한계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육아는 내가 가진 장점을 무력화시켰지만, 대신 가장 강력한 생존 근육을 키워주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나를 용서하고 나를 아껴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