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오너들

월 5천의 그녀.

by 물결

요리사인 남편은 이직이 잦은 직업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너들을 만났고, 나는 그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구경해 왔다. 그중에서도 이번 회사는 유난히 인상 깊었다.

수백억 대 자산을 가진 노년의 회장님. 그는 젊은 시절 최선을 다해 사업을 일궈냈고, 도심 전망 좋은 곳에 건물을 매입해 회사와 카페를 함께 운영했다. 회장은 '가족이 곧 신뢰'라 믿었고, 사업의 중요한 자리를 가족에게 맡겼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을까?

1층 카페는 회장의 아들이 운영했고, 2층 연회장은 조카가 맡았다. 겉보기엔 가족 중심 경영이었고, 속은 경계 없는 감정 경영으로 곪아 갔다.

남편이 입사하고 4개월 만에 카페는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회장 부부는 주말마다 나와서 서빙을 도왔고, 매출이 최고치를 찍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사장인 아들의 감정 기복은 심했다. 그는 주말에 어쩌다 한 번씩 나왔고, 모든 걸 카톡으로 쉬지 않고 지시했으며 주방에는 CCTV를 달고, 자신의 귀가 되는 알바 직원에게 매일 '오늘 주방 분위기 어땠어?'를 물었다. 그 알바는 동료들을 이간질했고, 분위기는 점점 삭막해졌다.


남편은 휴일 없이 일했고, 결국 두 명의 직원이 공황장애로 회사를 떠났다.

"몸이 힘든 건 견뎌도, 마음이 피폐해지는 건 더 힘들어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동료의 조언은 남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즈음, 조카가 등장했다. 그녀는 자신을 “월 5천 마케팅 사업가”라고 어필하며 회장에게 2층 연회장 운영을 명 받았고, 남편에게 쉬는 날 없는 연회를 지시했다. 연회가 늘었지만 추가 수당은 없었고, '열정으로 버티라'는 말만 돌아왔다.

퇴사를 통보한 남편을 붙잡으려고 그녀는 아내인 나에게 연락했다. "셰프님 아내분이 똑똑하시다고 들었어요." 사근사근하게 말하던 그녀에게 나는 퇴사를 고민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했다. 휴식 부재, 초과 근무 수당 부재, 그리고 감정적인 대우.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휴식은 보조 요리사를 더 뽑아 도울게요. 추가 수당은 성과 대비 드릴 수 있지만 시간으로 계산해 드릴 순 없어요. 스트레스는 저에게 푸세요. 제가 잘 들어드릴게요."

나는 돌려서 그녀에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권한이 없음을 상기시켰지만, 그녀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녀는 문제 해결 대신 '감정적인 대화'로 나를 붙잡으려 했다. 나는 부드럽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잘 이야기해 볼게요."라며 대화를 마쳤다.


다음 날, 남편은 연회를 마치고 조카님과 다시 대화했다.

"와이프랑 이야기까지 나누셨으면 조건을 제시하거나 개선하겠다고 하셔야죠. 그런 말씀은 하나도 안 하시면서 왜 못 나가게 하세요?"

"네? 저랑 이야기 잘 끝났는데 이상하네요. 말씀 잘 나눠놓고 그렇게 나오시는 게 당황스럽습니다."

이어 남편은 '와이프도 마케팅 경험이 많다'며 내 이야기를 꺼냈고, 조카님은 그에 맞서 "와이프 분이 저처럼 열심히 일을 하셨더라면 성공하셨을 텐데요. 교사 일이 뭐가 어렵다고 육아하면서 그렇게 힘들어하세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유치한 말싸움이 오가던 중, 남편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주방을 돕던 집안의 어르신이 조카분에게 "얘, 너는 일 안 해도 돈 따박따박 들어오잖니."라고 한마디 한 것이다. 우리의 조카님은 얼굴빛을 싹 바꾸며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왜 직원들 앞에서 하세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돈이 따박따박 들어온다고?

남편은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았다. 그녀가 말하던 '월 5천 마케팅 사업'은 이미 폐업한 뒤였고, 그녀는 실제 명의를 남편에게 넘기고 휴직 중인 일반 공무원이었다. 휴직한 상태에서 수당이 조금씩 들어오던 것이었다. 조카님은 공무원인 본인의 현실보다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미지에 심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르신이 자신의 정체를 발설하자 화를 냈던 것이다.


겸손하지 않고 허울만 좋은 회장님의 조카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과거의 나는 '성과'와 '스펙'으로 나를 증명하려 애썼고, 겉으로 멋진 사람으로 보이는 걸 성장이라 착각했다.

화려한 말이나 가짜 명함보다 꾸준한 행동과 선한 의도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예전엔 조카님의 번지르르한 말에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의 숨은 의도가 읽힌다.

그리고 예전엔 간판, 명함, 남들의 시선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가족들의 너를 믿는다는 눈빛, 교실 아이들의 따스한 미소가 진짜 나에게 주는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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