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교양의 권위를 찾아서
한때 교양은 '아는 것이 많음'을 의미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고전의 이름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는지가 척도였다. 하지만 지식이 검색 한 번에 쏟아지는 시대에, 지식의 축적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아이들에게 교양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서 교양의 자리는 오래전부터 좁아졌다.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정답 찾기가 교육의 언어가 되면서, 당장 시험에 나오지 않는 교양 따위는 당장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 결과 교양의 권위는 추락했다. 지금의 교육 현장은 생각하는 힘보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것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철학을 고민하고 사고의 깊이를 만들 기회를 유예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그 사람 교양 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그가 박식하다는 뜻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인성과 성품에 대한 존중이 내포되어 있다. 교양이란 머릿속의 지식이 가슴을 거쳐 태도로 배어 나오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유를 끝까지 밀어붙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안다. 타인의 고통과 상황의 맥락을 고려해 본 사람은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결국 교양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른 성품을 의미한다. 자신만의 단단한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고뇌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겸손함과 배려, 그것이 바로 교양의 진면목이다.
교양의 복권은 거창한 인문학 강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모의 '인내'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양의 환경은 다음의 세 가지를 지켜주는 일이다.
답을 주는 속도를 늦춘다.
아이가 질문했을 때 즉시 정답을 건네는 것은 아이가 사유할 기회를 가로채는 것과 같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되묻는 잠깐의 시간이 아이에게는 생각이 담긴 교양의 근육을 키우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쓸모없는 질문'을 환영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질문, 당장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엉뚱한 고민들이 사실은 아이의 철학을 만드는 토양이 된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머무는 아이의 호기심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지식보다 '태도'를 칭찬한다.
많이 아는 아이보다, 아는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여 조율하는 아이를 격려해야 한다. 지식이 성품으로 발효될 때 비로소 교양이라는 이름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교양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아이의 생각을 대신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한 스푼 덜어낼 때, 비로소 아이는 지적인 능력을 넘어 따뜻한 인성과 단단한 가치관을 갖춘 진정한 교양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오늘은 생각을
한 스푼 얹을까요?
아니면 한 스푼 덜어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