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전투
베르킨게토릭스는 각 부족에게 무기와 병력 차출을 요구했다. 그는 갈리아 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전략을 찾아냈다. 자신들의 강점이 기병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이는 거꾸로 로마군의 약점이기도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 장수가 마땅히 할 일이다. 카이사르는 비로소 최대 강적과 마주했다. 지금까지 갈리아 군은 분열돼 있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로마군은 조직력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게다가 카이사르라는 희대의 명장이 로마군을 이끌었다. 강력한 리더가 이끄는 단합된 소수의 로마군. 수적으론 우세였지만 구심점이 없었던 갈리아 군. 이기는 쪽은 늘 정해져 있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이 흐름을 바꾸려 들었다. 그는 로마군을 서로 떼어놓으려 작정했다. 그렇게 되면 로마군 특유의 조직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진다. 반대로 갈리아 군은 똘똘 뭉치도록 만들었다. 이전과는 정반대 흐름이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시켰다. 이후 내부 단합 작업에 착수했다. 로마군을 내버려둔 채 오히려 로마에 협조적이었던 자신들의 부족부터 공격했다.
베르킨게토릭스의 전략은 주효했다. 로마 편에 선 부족수가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로마군은 갈리아 부족에게 식량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들의 협조가 없으면 꼼짝없이 굶어야 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조금씩 카이사르의 숨통을 조여 왔다. 하지만 상대는 카이사르였다. 전장의 이런 판세 변화를 놓칠 리 없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물고 물리는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그러자 베르킨게토릭스쪽에서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나중에 나폴레옹을 상대로 모스크바의 러시아군이 펼친 ‘초토화’ 전략이었다. 나폴레옹 군단은 1812년 9월14일 모스크바를 점령하고도 러시아에서 퇴각해야 했다.
모스크바는 텅 비워져 있었다. 추위에 고전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배고픔이었다. 결국 프랑스 군대는 비참한 모습으로 러시아에서 물러났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갈리아를 초토화시켜 로마군의 식량 배급을 끊으려 시도했다. 군수품의 조달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이제 로마 병사들은 두 개의 전선과 마주해야 했다. 하나는 적군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굶주림이었다.
그런데 베르킨게토릭스의 새 전술은 나중에 카이사르에게 예상외 도움을 안겨주었다.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훗날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 원동력은 갈리아 전쟁의 어려움을 통해서 다져졌다.
극한의 고난을 함께 이겨낸 병사와 사령관은 혼연일체가 됐다. 카이사르의 병사들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반란에 동참했다. 그 한 사람도 폼페이우스와의 특수한 인간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이사르 곁을 떠났다. 고난을 통해 다져진 끈은 전우들을 단단하게 묶었다.
카이사르는 부르주에서 한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베르킨게토릭스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건재했다.
오히려 그에 대한 갈리아 부족들의 신뢰는 점점 높아져갔다. 결과적으로 갈리아 부족을 일치단결시키려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의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마침내 갈리아 전쟁 최대 승부처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무렵 로마군에 충격을 안겨준 사태가 발생했다. 줄곧 로마에 협조적이던 하이두이 족이 베르킨게토릭스 편으로 돌아섰다. 카이사르에겐 뼈아픈 손실이었다. 갈리아 연합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제 갈리아 연합군의 총병력은 30만에 육박했다. 그에 비하면 카이사르의 10개 군단은 다 합쳐봐야 5만 명이었다. 병사 수에서 1-6의 열세였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영리했다. 그는 로마군과의 최종 대결을 벌일 장소로 알레시아를 선택했다. 그곳은 갈리아인의 성지(聖地)였다. 갈리아 부족의 마음에 최대한 저항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영특한 결정이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부족의 성지로 들어간 다음 모든 갈리아 인들에게 격문을 보냈다.
‘이리로 달려오라, 모든 갈리아 인들이여!’
베르킨게토릭스가 알레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그곳은 고지대였고, 뒤편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물을 등 뒤에 둔 고지대니 당연히 수비하기 유리한 지형이었다. 더구나 알레시아는 누에고치처럼 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형세를 읽고 지리를 활용할 줄 아는 장수였다.
베르킨게토릭스의 격문은 밀림 속 타잔의 고함처럼 퍼져나갔다. 갈리아 부족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로마군은 안팎으로 적을 맞이하게 됐다. 알레시아 성안에는 베르킨게토릭스, 성 밖에는 25만 명의 갈리아 지원군이 포진했다. 앞뒤로 적을 둔 로마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드디어 마지막 전투가 시작됐다. 로마군과 갈리아 연합군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영특한 베르킨게토릭스는 소규모 접전을 통해 로마군의 약점을 파악해냈다. 북쪽 언덕이었다. 어둠을 틈타 6만의 갈리아 군을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로마군의 외곽에 위치한 갈리아 연합군도 성안의 군대와 연계해 북쪽 언덕을 집중 공격했다.
로마군은 앞뒤로 적을 맞았다. 카이사르는 상황의 엄중함을 알아차렸다. 이 전투에서 지면 로마는 갈리아를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패하면 로마는 물론 자신의 영광은 없다. 위기 상황서 카이사르는 누구도 예상 못한 엉뚱한 행동을 보였다.
카이사르는 붉은 망토를 걸친 채 망루에 올라섰다. 붉은 색은 주변 풍경과 대비돼 단번에 눈에 띄었다. 적군도 아군도 일제히 카이사르를 바라보았다. 다분히 의도적인 퍼포먼스였다.
적군에게도 아군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로마군 사령관은 그 순간 적의 제일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카이사르는 붉은 망토를 두른 채 망루에 우뚝 섰다.
살려고 하면 죽는다. 죽을 각오를 해야 비로소 살 길이 열린다. 사령관 카이사르는 로마 병사들에게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령관은 병사들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너희는?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서야 붉은 망토를 걸치고 높은 망루에 올라 설 수 없다. 모든 창과 칼이 그에게 집중될 것이다. 홀로 선 카이사르를 본 로마 병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아, 사령관이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구나.
그 순간 로마 병사들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훅하고 치밀어 올랐다. 그들도 죽을힘을 다해 적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전투의 분위기가 일순간 확 바뀌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확인한 카이사르는 위기에 처한 북쪽 언덕으로 달려갔다. 카이사르가 도착하자 병사들이 환호를 질렀다. 그곳의 불리한 전황도 조금씩 변해갔다. 그러나 여전히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치열한 공방전은 계속되고, 사상자의 수는 늘어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적 열세인 로마군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는 점점 초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