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과 루비콘강 7

by 성일만

전쟁의 신


위기 상황일수록 생각보다 행동이 더 빨라야 한다. 로마 보병의 평상시 행군속도는 5시간에 25㎞를 걷는 정도다. 강행군은 35㎞를 7시간에 주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간 훈련된 군사가 아니면 군장과 무기를 지닌 채 이런 속도로 이동할 수 없다. 카이사르는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 병참 없이 기병만 대동했다. 속도가 이 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판단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정략론’에서 “사려 깊은 장군은 부하들의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아군의 퇴로가 될 만한 길을 폐쇄시키는 극단적 방법도 쓸 줄 알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연전연승하던 항우가 보여준 파부침주(破斧浸舟: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다)의 결기를 이르는 말이다.

항우는 진나라를 상대로 분연히 떨쳐 일어섰지만 부하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은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강국이었다. 항우는 진과의 전투에 앞서 강을 건널 때 이용한 배를 가라앉혀 버렸다.

그리고는 밥 해먹을 솥을 부쉈다. 이 전쟁에서 지면 죽겠다는 각오였다. 돌아갈 배도, 먹을 것도 없으니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만 했다. 이처럼 지도자의 각오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 변수다.

소련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 레닌그라드 봉쇄에 이어 모스크바까지 함락 당할 위기였다. 소련 지도부는 우랄 산맥 너머 시베리아로 이동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 때 지도자 스탈린이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대중연설에 나서 “죽기를 각오하고 모스크바를 지켜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한 마디는 소련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반격에 나선 소련군은 막강한 독일군을 물리쳤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수도 키이우는 금세 함락될 것 같았다.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피신하라고 일러주었다. 젤렌스키는 “죽더라도 키이우에서 죽겠다”며 미국의 제안을 뿌리쳤다.

그는 국민들에게 “키이우를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전쟁의 양상은 바뀌었다. 러시아는 키이우에서 물러나 동부 돈바스 지역 공략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젤렌스키가 아프가니스탄 가니 대통령처럼 국민을 버리고 달아났다면 키이우는 쉽게 함락됐을 것이다.

사령관의 엄중한 태도는 싸늘한 밤공기를 통해 병사들에게 전달됐다. 로마 병사들도 사태의 긴박함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최대한 말수조차 줄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사와 사령관은 이심전심 한 몸이 되어 갔다. 카이사르가 키케로의 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곳 상황은 최악이었다.

갈리아 병사들의 수는 꾸역꾸역 늘어갔다. 반로마 편에 선 군사들의 수는 이미 6만에 이르고 있었다. 그들과 맞설 로마군의 수는 6천밖에 되지 않았다. 수적으로 앞선 갈리아 측에서 먼저 전투를 걸어왔다. 로마군은 웅크린 채 꿈쩍하지 않았다.

갈리아 군은 상대가 겁을 먹었다고 판단했다. 갈리아 군은 로마 진영 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로마군의 움직임은 없었다. 갈리아 군의 경계는 느슨해졌다. 천하의 로마군이 왜 이러지? 누군가 이런 의심을 한 번쯤은 해봤어야 했다.

손자병법은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교만하게 만들어야 이긴다”고 권고했다. 상대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카이사르가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갈리아 군은 대오도 유지하지 않은 채 무작정 덤벼들었다.

로마군은 철저히 방어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로마군이 가장 자랑하던 수비대형이었다. 상대가 정해둔 선을 넘어서자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로마군의 조직적 저항이 시작되자 갈리아 군은 단번에 중심을 잃고 말았다.

힘만 믿고 덤벼드는 상대는 일단 기세가 꺾이면 쉽게 무너진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군사의 수는 허세에 불과하다. 6만의 갈리아 군은 서로가 뒤엉켜 오합지졸로 변모했다.

로마군은 또 한 번 극강의 전투력을 입증했다. 상대는 두려움이라는 익숙한 감정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겐 여전히 숙제가 남아있었다. 로마군 15개 대대를 궤멸시킨 적장 암비오릭스를 붙잡지 못했다. 장수를 버려두면 반란은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곧 봄이 온다. 카이사르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예상을 깬 겨울 추격전에 돌입했다. 카이사르는 두 번째로 라인 강을 건넜다. 암비오릭스는 라인 강 동편의 검은 숲으로 달아났다.

독일의 겨울 숲은 마치 지옥의 입구 같았다. 게르만 족의 영토 깊숙이까지 쳐들어갔으나 끝내 적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이후 다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충분한 데미지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그곳으로 끝은 아니었다. 위기의 조짐은 여전히 꿈틀거렸다. 암비오릭스라는 파도가 지나가자 저 너머서 더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갈리아 전쟁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다.

갈리아 부족은 서로 잘 뭉치질 못했다. 단합이 잘 되었더라면 수적으로 불리한 로마군이 어떻게 그들을 이길 수 있었겠나. 갈리아 부족민은 모두 합해 천만에 이르렀다. 천만이 똘똘 뭉쳐 로마에 대항하면 막아 낼 방도가 없었다.

카이사르가 가장 우려해온 일이었다. 우려는 점점 현실로 변해갔다. 아르베르니 족은 유력한 갈리아 부족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 내부는 여느 갈리아 부족처럼 친 로마파와 반 로마파로 갈려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치열한 파벌 싸움 끝에 친 로마파가 승리했다. 부족 내부를 장악한 친 로마파는 반 로마파의 두목을 처형했다. 죽은 반 로마파 두목에게 베르킨게토릭스라는 똘똘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

프랑스어로는 베르셍제토릭스로 발음된다. 그런데 그가 인물이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친 로마파 부족장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로마에 맞서기로 했다. 모든 갈리아 부족들에게 반로마 항거에 동참하라고 부추겼다.

하나 둘씩 그에게 동조하는 갈리아 부족이 늘어났다. 그동안 갈리아 병사들이 오합지졸이었던 이유는 그들을 단합시킬 뛰어난 지도자가 없어서였다. 베르킨게토릭스가 갈리아 부족의 총사령관에 추대되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이제 카이사르는 단합된 천만 명을 상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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