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과 루비콘강 14

by 성일만

아, 브루투스


기병과 보병 모두 수적 열세였다. 특히 기병 쪽의 수적 차이가 문제였다. 상대의 기병을 아군의 보병으로 막아낼 비책은 없을까? 상식적으로 보병은 기병을 이길 수 없다.

더구나 상대편 사령관은 폼페이우스다. 개선식을 세 차례나 치른 로마 제일의 명장이다. 상대는 수적으로 우세한 보병에다 더 많은 기병을 지녔다. 카이사르에겐 또 하나의 전술적 악재가 있었다.

상대는 고지대, 아군은 낮은 곳에 위치한 지형 차이였다. 카이사르는 묘수를 생각해내야 했다. 바둑에서 묘수(妙手)란 상상을 뛰어넘는 승부수를 말한다. 묘수란 다름 아닌 상식의 파괴다. 정상적인 판단을 무너뜨리는 창조적 발상을 말한다.

양 진영의 보병들이 강을 끼고 앞뒤로 자리를 잡았다. 양 측의 기병은 강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폼페이우스 기병들은 여차하면 카이사르 진영을 에워쌀 태세였다.

노련한 폼페이우스는 전선의 군데군데 만기 제대를 한 후 재 소집된 2천 명의 고참병들을 배치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갈 것이다.

카이사르 역시 고참병들을 적극 활용했다. 다행히 수적 열세 상황 중에서도 고참병 수에선 오히려 카이사르 진영이 더 앞섰다. 갈리아 전쟁을 통해 많은 실전 경험을 쌓은 덕분이었다. 서로의 진영을 살펴보는 순간 카이사르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고참병들만으로 6개 대대를 꾸려 제 4열에 배치했다. 전투가 개시되자 예상대로 폼페이우스 기병들이 카이사르 군을 포위하려 들었다. 그 때 제 4열에서 6개 대대 고참병들이 앞으로 불쑥 나섰다.

그들은 상대편 기병들의 말에게 바짝 접근했다. 신참 병사들은 기병들의 말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제로 말은 겁 많은 동물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낯선 사람을 피한다. 고참병들은 실전을 통해 그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상대 기병을 태운 말들은 바짝 다가선 낯선 사람에게 놀란 나머지 주춤거렸다. 앞발을 치켜들어 자신을 방어하려 들었다. 카이사르가 기대했던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상대 기병들은 카이사르 측 보병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폼페이우스의 자랑인 기병들은 순식간에 기동력을 잃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묶여 있었다. 전투의 양상이 한 순간 바뀌었다. 기병이 주춤거리자 폼페이우스 군 전체가 흔들렸다. 일시에 전열이 무너져 내렸다.

진영이나 둑은 한 번 무너지면 걷잡기 힘들다. 후퇴를 해야 하나 마나. 이 순간이 지휘관에게 가장 어려운 선택의 기로다. 후퇴는 전체의 사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버티고 있으면 자칫 큰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던 오래 생각을 끌면 안 된다. 버티느냐, 물러나 다음을 도모하느냐. 버텨낼 수 있으면 버텨야 한다. 그러나 버티다가 완전히 무너지면 회복불능에 빠질 수 있다.

이 순간 카이사르라면 어떻게 했을까.

폼페이우스는 퇴각을 결정했다. 아직은 수적으로 우세다. 물러나 부대를 재정비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치명적 오판이었다.

전투는 기세의 대결이다. 수적 우세도 기세에서 밀리면 힘을 쓰지 못한다. 한 번 물러나면 끝까지 물러나야 한다. 달아나는 군대에 질서가 있을 리 없었다. 폼페이우스 군대는 오합지졸처럼 서로 뒤엉킨 채 퇴각했다.

카이사르는 비워진 폼페이우스 막사에 도착했다. 안에는 각종 사치품으로 가득했다. 이곳이 전쟁터가 맞나 싶었다. 카이사르의 막사에선 구경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폼페이우스 군 2만 4천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 가운데에 마르쿠스 브루투스도 끼어 있었다. 나중에 셰익스피어 연극의 대사로 더 유명해진 이름이다. ‘브루투스, 너 마저!’ 그 브루투스다.

로마사를 읽다보면 브루투스라는 이름과 자주 마주친다. 누가 누군지 헷갈릴 때가 많다. 여기에도 브루투스, 저기에도 브루투스가 등장한다. 카이사르의 암살 현장에도 두 명의 브루투스가 있었다.

데키우스 브루투스와 마르쿠스 브루투스다. 다행히 성만 같지 이름은 다르다. 그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저 유명한 ‘브루투스 너마저’의 주인공은 마르쿠스 브루투스다.

브루투스와 또 한 명의 암살자 카시우스는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한다. 그들은 단테에 의해 가장 엄중한 지옥에 떨어졌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곳 중 단테가 맨 먼저 경험한 곳은 지옥이었다. 두 가지 유형의 죄인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첫 째는 흔히 조폭으로 통칭되는 폭력집단들이다. 다음은 지능형 범죄자들이다. 단테는 이 유형의 범죄자들을 지옥 가운데도 가장 밑바닥에 두었다. 비교적 약한 범죄자들이 가는 곳이다. 깔때기 모양의 지옥은 아홉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상황은 점점 비참해진다. 지옥에는 카이사르와 관련된 세 명이 인물이 머물러 있다. 한 때 그의 연인이었던 클레오파트와 두 명의 암살범들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두 번째 단계에 있다. 간신히 최악을 면했다.

다만 육욕으로 인해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다. 카이사르를 죽인 두 남자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마지막 아홉 단계 지옥에 있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자를 가둬놓는 맨 꼭대기 층이다. 그곳에는 세 명의 죄수들이 있다. 그들 둘과 예수를 판 가롯 유다다.

이 셋은 녹지 않는 얼음 지옥에서 악마 루시퍼에게 머리를 반 만 삼켜진 채 영원의 시간을 헤매고 있다. 고통은 계속되지만 시간은 멈춰있다. 지옥에 떨어진 채 시간이 멈춰 버린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그들의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클레오파트라


포로로 잡힌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게 특별한 청년이었다. 그의 오랜 연인 세르빌리아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아들이 없었던 카이사르는 브루투스를 친 아들처럼 여겼다.

시칠리아에선 카이사르 군대가 카시우스에게 패배했다. 파르살루스 전투의 승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시칠리아의 카이사르 군은 항복을 했을 지도 모른다. 폼페이우스가 패배하자 카시우스도 어쩔 수 없이 카이사르에게 투항했다.

달아나던 폼페이우스는 북아프리카로 피신했다. 원래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어린 남동생이 공동정권을 이끌고 있었다. 당시에는 클레오파트라가 권력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이집트의 소년 왕은 해안까지 마중 나와 폼페이우스를 환대했다.

폼페이우스는 마지막까지 정치적 판단에 어두웠다. 이집트인들의 말만 믿고 육지로 향하던 폼페이우스는 바다 위에서 살해됐다. 며칠 후 폼페이우스의 목이 카이사르에게 전해졌다.

이를 본 카이사르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내전기’에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폼페이우스의 죽음을 알았다”고 간략하게 적어 두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애증의 관계였다. 카이사르는 과거 갈리아로 떠나기 전 작성한 유언장에 폼페이우스를 상속인으로 지정해 두었다.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한때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사위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 ‘클레오파트라’에는 잊지 못할 장면이 나온다. 클레오파트라가 카페트에 몸을 둘둘 만 채 카이사르의 침소에 몰래 숨어들었다. 카페트가 풀리면서 드러난 여인의 빛나는 미모. 테일러는 수많은 여배우 중에 가장 클레오파트라에 적합하다는 평을 들었다.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31살이었다. 실제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는 21살, 카이사르는 52세였다. 나이로 보면 십대의 양귀비와 60대 당 현종의 만남을 연상시켰다.

바람둥이 카이사르는 곧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이다. 그녀와의 사이에 카이사리온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로마제일의 남자를 차지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권력을 손에 넣었다. 동생을 제치고 이집트 왕위를 차지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천문학을 빌려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다. 로마의 전통적인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택한 이 달력은 ‘율리우스력(曆)’이라고 불린다. 매년 일곱 번째 달은 그의 성을 따서 율리우스(Julius·영어로는 July)로 부르게 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로마로 돌아오며 카이사르가 남긴 유명한 승전보다. 여기서 카이사르의 현란한 라틴어 전쟁서사시 ‘내전기’는 마감된다. 그가 쓴 마지막 문장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전쟁의 시작이었다.” 책의 끝인지 시작인 모를 애매한 표현이었다. 마치 앞으로 있을 자신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했다.

카이사르는 난생 처음 로마에서 개선식을 가졌다. 집정관을 위해 개선식을 포기했지만 이제는 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카이사르는 10년 임기의 독재관에 선출됐다. 정치적 힘을 갖게 되자 미루었던 사회개혁에 착수했다. 술라처럼 살생부를 작성하거나 재산을 몰수하지는 않았다.

카이사르는 속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파괴된 폼페이우스 석상도 다시 세우게 했다. 패배한 적을 감싸 안는 포용정책이었다. 카이사르는 방대해진 로마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공화제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에게서 ‘최종 권고’ 권한을 박탈시켰다. 자신으로 하여금 루비콘 강을 건너게 만든 바로 그 법이었다. 원로원 의원의 특권 가운데 하나인 배심원 제도도 개혁했다. 일정 이상의 재산을 가진 중산층이면 누구나 배심원이 될 수 있게 했다.

교육과 의료문제를 위해 교사와 의사에게는 인종과 상관없이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하층민들에겐 밀을 공짜로 나누어주었다. 민중들은 카이사르의 개혁에 환호했다. 하지만 귀족들은 불편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2월 종신 독재관에 올랐다. 반대파들의 불만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들은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한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다. 오히려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에게 충성맹세를 했다. 카이사르는 그들의 서약을 받은 후 한 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경호원들을 해산시킨 것이다. 전략가인 그가 왜 이런 안이한 판단을 내렸을까. 평소의 카이사르와는 다른 조치였다. 무엇이 그의 경계심을 무너뜨렸을까. 불과 한 달 뒤 이 결정이 크게 잘못되었음이 드러났다.

3월 15일 아침 운명의 그날 카이사르는 원로원으로 향했다. 원로원 회의가 폼페이우스 석상 아래서 열릴 예정이었다. 카이사르에 의해 다시 세워진 정적의 석상이었다.

그는 며칠 후 파르티아 원정을 떠날 예정이었다. 주변에 경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14명이었다. 그 중 9명은 원래부터 카이사르의 반대편에 섰던 인물들이다.

데키우스 브루투스를 비롯한 나머지 5명은 카이사르 편이었다. 서로 다른 편들끼리 어떻게 반역을 도모할 수 있었을까. 카이사르 암살은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그다지 치밀하게 진행되진 않았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둔 칼로 카이사르를 찔렀다. 하지만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난후엔 허둥댔다.

카이사르는 23군데나 칼에 찔렸다. 그는 마지막 순간 토가 자락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고 한다.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그를 찌른 범인들 중 상당수는 평소 신뢰했던 자들이었다.

사후 공개된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의하면 제 1 상속인은 옥타비아누스였다. 제 2 상속인은 데키우스 브루투스, 카이사르가 아끼던 군인이었다. 그런 탓에 ‘브루투스 너마저’의 브루투스는 마르쿠스가 아닌 데키우스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카이사르는 죽으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그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이 대사를 사용하면서 마치 사실처럼 굳어져 버렸다. 천재의 상상력이 만든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카이사르는 이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에 투 브루테! (Et tu Brute!·브루투스 너마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장악했던 카이사르는 56살의 한창 나이에 죽었다. 그는 황제가 되진 못했지만 이후 로마의 황제들은 기꺼이 카이사르로 불리길 희망했다.

절대자 카이사르가 제거됐다. 제 1 상속인 옥타비아누스는 18살에 불과했다. 냉엄한 로마의 정치세계에서 권력을 차지하기엔 너무 어렸다. 카이사르를 살해한 칼끝은 언제든 그를 향할 수 있었다.

권력은 무주공산의 진공 상태로 빠져들었다. 모든 로마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였다. 권좌의 새 주인은 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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