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요단강 4

by 성일만

첫 실패


여리고 다음 공격 목표는 아이 성이었다. 작고 만만한 상대였다. 여리고에 비하면 성의 방비도 약하고 주민도 많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3천의 군사를 보내 그곳을 공격했다.

이 방식은 군사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먼저 적진을 정찰했고, 상대의 규모에 따라 적당한 수의 군사를 보냈다. 그런데 이 작전은 실패했다.

성서 기자의 결론은 역시 ‘신의 뜻’이었다. 인간의 방식으론 문제가 없었으나 신의 뜻은 달랐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그 분, 신의 뜻이었다. 구약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 실패 이후 여호수아는 보다 신중해졌다. 두 번째 아이 성 공격에는 삼만이나 되는 군사를 보냈다. 유대 군사들이 군사적 전술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유대 군은 거짓으로 달아나는 척하는 위장전술과 매복을 처음으로 펼쳤다. 표면적으론 신의 뜻이라 말했으나 취한 조치는 인간적이었다.

상대는 변화된 전술에 당황했다. 더구나 이전의 승리로 인해 그들은 전투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방심을 범했다. 유대 군사들이 달아나자 앞뒤 재보지도 않고 추격에 나섰다. 아이 성안의 군사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매복해있던 유대 군사들이 쉽게 성을 차지했다. 아이 성 1만2천 주민들은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요단강 이편과 저편의 구분은 엄혹했다.

승리에 이은 잔인한 학살은 상대의 대응에 변화를 가져왔다. 가나안 부족들은 연합군을 구성했다. 혼자서 안 되니 여럿이 힘을 뭉쳤다. 유대 군은 단숨에 병기와 병력에서 열세에 놓이게 됐다.

여호수아는 또 다른 전략을 선보였다. 이번엔 기습전이었다. 한 밤 중에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30㎞를 내달려 새벽에 적군을 덮쳤다. 숙달된 로마군이라면 5시간에 주파할 거리였다. 그러나 당시 유대 군은 밤을 새워서 달려야 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가나안 연합군의 대오는 와르르 무너졌다. 전쟁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다. 미처 시간이 부족해 적군을 다 죽이지 못했다. 어두워지면 전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호수아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서편으로 기울어가던 태양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여호수아서 10:12 이 구절은 나중에 천동설의 배경이 됐다. 태양이 멈추었다는 것은 곧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지구는 그대로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게 천동설이다. 이로 인해 지동설을 주장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죽음을 당했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모두 끝냈다. 이후부터 사사의 시대가 열렸다. 고대 이스라엘의 사사(Judge)는 재판관이면서 전시에는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직책이었다. 사사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신권이 약해졌다. 마침내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왕정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12명(13명이라는 주장도)의 사사가 있었다. 그들의 권한은 한시적이었다. 용도가 사라지면 곧 자리에서 물러났다. 로마 공화정의 독재관과 비슷한 위치였다.

이스라엘에서 왕정은 결코 허용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신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런 만큼 신권이 강력했다. 사사들은 주어진 역할을 마친 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12명 가운데 마지막 사사가 긴 머리카락으로 유명한 삼손이다.

이 무렵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이 등장했다.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중해를 건너온 블레셋 민족은 이미 철기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뛰어난 무기에 체격도 월등해 오랫동안 유대인들을 괴롭혔다. 이들 사이 악연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 데릴라의 유혹에 빠져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잃었다. 그로인해 두 눈이 뽑힌 채 신전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삼손은 신전의 돌기둥을 무너뜨려 3천 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었다. 영화의 소재로 자주 나올 만큼 드라마틱한 최후였다.

강력한 이웃의 출현은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다. 사사시대의 혼란상은 마치 아테네의 초기 민주정을 연상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왕을 열망했다.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개구리들 같았다.

하지만 제사장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해야 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그 일로 사무엘의 정국 장악력이 약해졌다.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일부를 왕에게 넘겨줘야 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신권과 왕권이 분리됐다. 하지만 사무엘은 권력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제대로 된 왕을 선택하면 자신의 권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카톤


권력의 속성은 나누어지길 거부한다. 권력은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눌 분(分)은 칼(刀)로 고기(肉)를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늘 문제가 생긴다. 항상 남의 고기가 커 보이기 때문이다. 탐욕의 틈새에서 불만이 싹트고 이는 분쟁으로 이어진다.

고기 나누기가 그럴 정도인데 하물며 권력은 어떻겠나. 권력의 크기는 눈으로 가름되지 않는다. 칼이 권력을 바르게 나눈다하더라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저마다의 눈에 담긴 탐욕이 공정을 그르친다. 욕망이라는 그릇에는 원래부터 적정량이 없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누군가와 나누어 가져야 할 때 비극은 싹을 틔운다.

권력자는 상대에게 내줄 힘의 크기를 최대한 줄이려 애쓴다. 제사장 사무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권을 장악한 사무엘은 애초부터 누구와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누구를 왕으로 삼을 생각은 더더욱 갖지 않았다.

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구약성서는 “백성들의 바람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사무엘 상 8:5”고 솔직히 인정했다. 백성들의 바람이란 곧 왕의 출현을 의미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일이 생겼다. 자신의 아들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성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결국 이 일로 사무엘은 백성 다수의 바람대로 왕을 지목해야만 했다. 그러나 왕을 선택하는 자와 왕을 바라는 자들의 일치점은 요원했다.

사무엘이 원하는 왕은 조금 모자라는 왕이었다. 백성들에겐 불신 받고, 자신에겐 고분고분하고.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초라한 가문 출신일수록 유리했다. 흠결이 많은 인물일수록 좋았다. 정치적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어야 했다.

그를 따르는 자가 많으면 곤란했다. 그러나 외모만큼 번드레할수록 좋았다. 백성들은 그런 자에게 현혹되기 쉽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허접한 인물. 고르고 고르다보니 한참 모자라는 왕을 선택하고 말았다.

사울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된 베냐민 지파에 속했다. 베냐민 지파는 겨우 사면을 받았지만 12지파 가운데 가장 뒤진 집단이었다. 왕의 권위를 인정받기 힘든 조건이었다.

사울은 우유부단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다. 그가 가진 조건들은 사무엘의 마음을 충족시켰다. 사울을 왕으로 지명했다. 왕이 된 후에도 사울은 여전히 밭에서 소를 몰며 농사를 지었다. 그저 외모 하나만 그럴 듯했다. 초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다. 막상 왕으로 뽑히고 나니까 사울은 슬슬 임명권자의 뜻을 그르치려 들었다. 주변에서 그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권력은 아들과도 나눌 수 없다.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사울 왕의 권력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에게는 사무엘이 가지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군사력이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총구(군사력)에서 나온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사울의 그립감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사울의 힘이 커질수록 사무엘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마침내 마주 달리던 두 개의 열차는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숙적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일이다. 사울은 즉각 군대를 출동시켜야 했다. 상황이 워낙 급박했다.

하지만 이는 신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였다. 신국에선 전쟁 출동에 앞서 먼저 제사부터 지내야 했다. 그러나 제사를 주관할 사무엘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 다급한 사울은 자신의 주제로 제사를 올렸다.

이는 제사장 사무엘에 대한 명백한 월권이었다. 사울이 제멋대로 제사를 지냈다는 소식을 접한 사무엘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 –사무엘 상 13:14’이라며 경고했다.

사무엘과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 후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사무엘은 전쟁을 앞두고 “적의 군사는 물론 남녀노소 모든 백성과 그들의 가축까지 진멸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사울은 사람만 죽이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들을 남겨 두었다. 두고두고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엘은 “내 귀에 양의 울음소리가 들림은 어찌된 일이냐”며 사울을 다그쳤다. 분노한 사무엘은 왕을 퇴위시키기로 결심했다. 신성(神聖)이 세속의 권력보다 앞선 시대였다.

수 천 년 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신성 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가 교황 앞에 무릎 꿇은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이다. 이 사건은 ‘아비뇽 유수’로 이어지며 결국 교황권의 약세를 불러왔다.

사무엘은 은밀히 새로운 왕을 물색하러 다녔다. 새 왕의 조건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엔 좀 더 모자라는 상대를 물색했다. 그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으로 찾아갔다. 훗날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사무엘은 시골 목동의 집안에서 왕재를 찾으려 했다. 여덟 명의 아들을 둔 이새라는 목동의 집이었다.

눈치 없는 목동은 장신에다 미남인 맏아들 엘리압을 먼저 선보였다. 사무엘의 성에 찰리 없었다. 이미 잘난 사내에게 실망한 다음이었다. 잇달아 일곱 명의 아들을 내보였으나 모두 사무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막내가 남아 있긴 한데. 설마 막내가 사무엘이 원하는 왕재 일리 없었다. 막내는 히브리어로 ‘하카톤(haqqaton)’이라 부른다. 이 단어에는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날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형들에게 중요한 일(왕위 간택)이 있어 홀로 양을 돌보고 있었다. 양은 반드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동물이다. ‘하카톤’ 다윗은 보기에 평범했다. 가문도 좋지 않았다. 룻이나 나합 같은 이방 여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모계를 중시하는 유대 사회에서 모압 여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은 왕가의 혈통으론 낙제점이었다. 다윗은 ‘하카톤’ 다윗을 왕으로 간택됐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극심한 내전으로 빠져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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