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뼈
1162년 5월 31일 몽골 고원의 작은 부족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몽골의 검은 뼈에 속했다. 주류인 흰 뼈에는 들지 못했다. 사냥에 의존해 살아 온 부족이었다. 흰 뼈 부족은 목축을 주로 했다.
검은 뼈들은 겨울이면 약탈에 나섰다. 야생의 삶이었다. 약탈 품목 가운데는 여자도 있었다. 12세기 몽골 고원에서 젊은 남자가 신부를 데려오려면 처가에 상당한 선물을 건네줘야 했다. 그럴 여유가 없으면 노역으로 대신했다. 약탈은 가장 간편한 방식이었다. 과정은 잔인했다.
상대편 젊은 남자들은 모조리 죽였다. 젊은 여자만 데려 갔다. 노인과 아이들은 버려졌다. 초원의 유목민은 습격을 당하면 젊은 남자들부터 달아났다. 이 비열함 속에는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 녹아 있었다. 살아남아야 종족 보전이 가능했다. 그래야 복수도 할 수 있었다.
미국의 동양사학자 오웬 라티모어는 “(칭기즈칸이) 상서로운 시기에 딱 알맞은 지리적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위대한 인물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어느 시기, 어떤 환경이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칭기즈칸의 원래 이름은 테무친이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자신이 죽인 전사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테무친은 최고의 강철을 의미한다. 몽골어 ‘테물’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 추정된다.
‘테물’에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물불 안 가리는 ‘성급한 성격’과 그와 어울리지 않게 ‘창조적 생각’이라는 뜻이 녹아있다. 성급함과 창조는 언뜻 이율배반으로 느껴진다. 둘 사이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성격을 이보다 잘 표현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테무친은 ‘회색 눈의 인간’ 부족에서 태어났다. 그의 공식적인 출생연도는 1162년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몽골정부는 칭기즈칸 탄생 기념일을 1162년 5월 31일로 삼고 있다.
테무친의 출생 과정에는 몽골 초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의 부모는 약탈혼으로 맺어졌다. 어머니는 메르키트 족 전사의 아내였다. 남편과 신행길에 나섰다가 예수게이에게 납치를 당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남편을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자신이 입던 저고리였다. 이런 경우 늘 있어온 몽골식 이별 방식이었다. 워낙 부녀자의 약탈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이런 일을 당한 여인들은 저마다 입던 옷을 벗어 던져주었다. 자신들의 향기라도 간직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헤어지면 대개 영영 생이별을 했다. 이 두 젊은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수게이에게는 이미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예수게이와 두 번째 부인 사이에 태어난 테무친은 손에 핏 덩어리를 쥔 채 태어났다. 왜 하필 피였을까. 그의 손에 의해 흘려야할 피의 양을 미리 예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테무친은 여덟 살 때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신부 감을 찾기 위한 설레는 여행이었다. 원래 목적지는 어머니의 친정 메르키트 족 주거지였다. 테무친은 중간에 들른 어느 부족의 집에서 한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첫 사랑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 왔다. 테무친은 아버지에게 그 소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졸랐다.
처가에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테무친은 노역으로 대신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혼자 두고 되돌아갔다. 이후 테무친은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예수게이는 귀가 길에 타타르 부족들에 의해 독살 당했다. 그는 두 명의 부인과 일곱 명의 어린 자식을 남겨두었다.
족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당장에 처할 재난의 예고편이었다. 테무친은 족장을 상징하는 흰 말위에 올랐다. 하지만 부족민들이 어린 그를 믿고 따르기엔 초원의 삶이 너무 거칠었다. 부족민의 3분의 2가 금세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들을 돌보던 타이치우드 족은 테무친 일족을 버려둔 채 여름 야영지로 가버렸다. 대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소 부족은 약탈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부족민들이 자고 나면 하나, 둘 사라졌다. 그들은 밤을 틈타 가축까지 데려 갔다.
아름다울 미(美)는 양(羊)과 큰 대(大)자의 합성이다. 양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유목민의 심정을 말한다. 양의 성장이 얼마나 기뻤으면 아름답다는 말의 원형이 되었을까. 무엇보다 양이 없으면 그들은 꼼짝없이 굶어죽어야 했다.
테무친의 가족은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쥐를 잡기 위해 온종일 들판을 헤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놓인 가족은 대개 살아남지 못한다. 테무친의 가족은 죽지 않았다.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강 근처에 터를 잡았다. 강은 버려진 생명에게 기댈 언덕을 내주었다.
그런 와중에 이복형제간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평소에도 그들은 자주 싸웠다. 10대 초반의 형제들은 주로 먹을 것을 놓고 다퉜다. 형인 벡테르가 테무친이 잡은 고기를 빼앗았다.
테무친은 발끈해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동생과 힘을 합쳐 이복형을 활로 쏘아 죽였다. 아직 다른 부족의 보호를 받던 테무친으로선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평소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테무친이었다.
그들이 어떤 해코지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테무친의 어머니는 늘 형의 편을 들었다. 거기에는 슬픈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