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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Mar 03. 2023

아들, 일어나 봐.

두 사람의 꿈

아버지는 꿈을 꿨다. 


자신은 늙고 자식들은 장성하여 후손까지 가졌다.


그는 자손들을 만나는 것이 반가웠을까?


모든 장면은 그의 바람과는 많이 다른 미래였다.


그는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자식들을 뛰어난 인간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형제와 자손들은 그다지 풍족하게 사는 것 같지 않았고, 그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픈 손가락인 첫째 자식은 여전히 사회적 자립이 불가능해 보였다.


가장 믿음직한 둘째 자식은 언제 돌아올지 모를 만큼 너무 먼 곳으로 떠나 버렸다.


철없는 막내 자식은 인생이 잘 풀리는 듯했으나 어느 순간 고비를 넘기기 힘겨워하는 듯했다. 


그때는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기엔 너무 늙어버렸고, 자식들을 더 이끌어주기엔 그들도 너무 커버렸다.


터벅터벅 뒷산을 걸으면서 그는 생각을 정리해 봤다.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더 무엇을 바라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생각이 마무리되지 못한 채로 꿈에서 깨었다.


그는 이 꿈의 의미를 더 깊이 숙고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잠들지 않았다.


꿈 속의 나이에 도달하기까지 아마도 30년은 더 남았을 것이다. 


아직 육체는 젊고 의지는 충만한데, 벌써 공수래공수거를 논할 수는 없지 않나? 


조금 이른 새벽, 아버지는 막내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나는 꿈을 꿨다. 몸이 작아졌다.


침대가 아닌 바닥 이불에서 누워있었고 아버지는 나를 보고 있다.


아버지가 젊어 보인다. 일요일 아침이구나.


오늘따라 아버지는 형들은 두고 나만을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피곤하고 졸렸지만, 나는 원래 아버지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아마 같이 약수터에 잘 갔다 돌아오면, 아침밥이 차려져 있을 거고, 그다음엔 일요일 특선만화를 볼 수도 있다.


그리운 이름이다. '밍키, 히맨, 쉬라, 태권특공대...' 그런데 왜 그런 게 보고 싶은 거지?


약수터에 도착해서 운동기구에 올라타 몸을 휘젓고 있는데,


아버지는 오늘따라 운동을 별로 안 하신다. 그저 먼 곳을 보다가 한 마디 하신다.


"너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건강관리도 잘해야 해. 운동을 꾸준히 해라. 훌륭한 사람일수록 건강을 잘 관리하는 거야. 그리고 부모를 꼭 모시진 않더라도 가까이 지내는 게 좋아. 형제들, 네 형들하고도. 그리고...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아버지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뭐든 얘기해라. 너희는 아버지가 있다는 게 참 고마운 건 줄 알아야 해."


아버지다운 조언이다.


어조는 진중하지만 명령형에 가까운 위압적인 화법. 난 항상 부담스럽게 느껴왔다.


친구처럼 대해라는 건 그냥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말을 듣고도 괜찮은 기분이다.


"에이 아버지, 저 알아서 다 잘해요. 저 엄청 공부 잘하고 엄청 건강해요."   


마치 아버지가 정말 친구인 듯 친근하게 말했다. 


말하고 나서 나도 흠칫 놀란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정도로 편하게 말하는 아이가 아니다.


아버지도 아이의 뜻밖의 반응을 보고 조금 놀랐지만 이내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친김에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한다.


"그래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언제든 얘기해라. 아버지는 늘 열려 있다."


왜 나는 아버지를 그날따라 편하게 느꼈을까?






점심시간, 아버지 전화가 온다.


'도대체 잠깐 눈 붙이는 시간도 방해하시다니!!'


'어제도 전화하신 분이 왜 오늘도 전화하냐. 요새 아버지 왜 이러시지?'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신다. 하던 버릇이 있어 예의 바르게 받아준다.


"환자들은 좀 오더냐? 내 감기 증상은 왜 이리 오래가냐? 엄마가 자꾸 아파 어디 여행을 못 가고 있다....."


그리고는 늘 얘기했듯이 공부하는 것 자랑을 하신다.


방통대 대학원까지 등록하고 결국 수료해서 만나고 있는 학우들.


그분들과 어울리면서 독서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정기적인 학술 모임도 가지면서 또 다른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그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지만 다들 본인을 의지한다는 자뻑도 섞어가면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아버지 말 한마디에 꼼짝을 못 했다. 그만큼 무거운 말만을 하던 분이다.


명령형 말투가 이젠 무섭지 않다.


밥 먹고서 자지도 못하고 아버지랑 길게 통화하고는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아들이 친구처럼 대하길 바랐던 게 아닐 거야. 


아버지야말로 아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거야.'


나보다 30살 많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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