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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Mar 03. 2023

물려주고 싶은 것

부모의 목표

입시생, 의대생, 수련의, 개원의로서 한국에서 살아오며,

내 마음을 관통하는 정신은 '근면과 성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기 의사들이 그러할 것 같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쳐오면서 함께 느끼는 회의감은 적지 않았다.

한 단계를 통과하면 그 단계에 남겨둔 많은 지식과 경험들은 무효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수능의 지식은 지금 전혀 남아있지 않고, 이제 의대생의 지식도 남지 않은 것 같다. 

수련의 때 기억만 약간 남아서, 가끔 교수를 하는 동기를 만나면 다시 떠오르는 정도이다. 


그러니 열심히는 살았지만, 그 결과만 취했을 뿐, 과정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시간은 결과를 내어놓기 위한 과정으로의 가치만 있기에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고마운 것이었다.

목표 지향적인 내 의지는 그래도 중간중간 바람직한 성과를 내놓으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너무 멍하게 봤는지, 

분명 처음 자각할 때가 스무 살 정도였는데,

벌써 중년이 되어 버렸다.

나만의 간절한 목표가 몇 개나 스쳐 지나갔던가?


그 사이 아이들은 부모의 요청에 찬반을 표명할 정도로 커 버렸다.

아이와 처음 교감을 나누기 시작했을 때 분명히 느꼈던 것이 있다. 

'시간은 이 아이의 순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다음 단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의 사진 한 장 한 장을 다시 보아도 이 생각은 옳다.

아이는 그 사진 속의 공간과 시간을 모두 채웠다.

아이를 향한 내 시선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정신도 그 순간의 삶에 집중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현재의 바깥, 그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것, 혹은 그전을 고려하는 것,

이것은 현명한 어른의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종종 과다한 생각의 실체는 그저 불안일 뿐이고, 산만함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현재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 과연 미래의 산물은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된 부모에게 

자식은 오히려 훌륭한 스승이 되어 준다.

그들의 무계획적이지만 한 순간에 충만한 기쁨, 한 순간에 가득 찬 슬픔,

그것이야 말로 어른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그들에게 '그다음, 그다음'을 강요하기 전에, 

같이 그 순간을 느껴보는 것이야 말로, 부모로서 적절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심해 보았다.

나는 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근면함과는 또 다른 형태의 진지한 마음을 담으려고 한다. 그것은 충만함이다. 

세계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픔도 있고 좌절도 있고, 허무함도 있다.

나는 눈앞의 현상이 주는 모든 감정을 충실히 느낄 것이다. 

꼭 그것을 남에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명확히 알아볼 것이다.

물론 나에게 주어진 목표를 배제하고 방탕하게 지내려는 것은 아니다.

목표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목표 의지 자체는 이 순간의 것이다.

불안해할 것 없이 이 목표가 주는 기쁨, 성취감, 즐거움을 그 자체로 누릴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결심은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경험하는 그대로를 자기 인생으로 느끼며 사는 법, 

그들의 생각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험의 전 과정에 빠져 자신감을 잃거나,

경험의 후 과정으로 흘러가 미리 불안감을 느낄 때,

아무것도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어른의 지혜를 담은 용기를 줄 것이다.

본디 그들의 것이었던 마음의 충만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들이 지금처럼 완전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궁극적 목표이고 또한 기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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