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가는 곳
도망치려던 건 아니다.
그저, 내 안에서 울리던 소음을 잠시 꺼보고 싶었을 뿐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해야 할 일들, 어깨를 누르던 누군가의 기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음의 무게들.
하루하루가 조용히 나를 짓눌렀다.
생각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날들, 나는 천천히 목욕탕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뿌연 김이 나를 감쌌다.
탕 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뜨겁고 묵직한 온기가 발끝에서부터 몸 안으로 번져든다.
이마엔 땀이 맺히고, 굳어 있던 어깨가 스르르 풀린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조용해진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복잡하던 생각들이 천천히 지워진다.
시끄럽던 머릿속은 점차 몽롱해지고, 어설픈 반성도, 멀게만 느껴졌던 내일도, 뜨거운 김 속에서 조용히 녹아내린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 머문다.
아무 생각 없이 고요를 들여다보다 보면, 문득 마음에 스친다.
— 인생, 뭐 있나.
내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
느려도 괜찮다는 위안.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용기.
온갖 잡념이 걷히고 나면, 거울처럼 맑아진 마음속에서
미뤄두기만 했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숨죽인 채 오래 머물고 싶던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