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서린 날엔 아무 생각 없이

2. 수건 너머, 온기의 비밀

by 백공란



아는 사람과 목욕탕에서 마주친다?

상상만 해도 온몸이 얼어붙고, 수건부터 찾아 얼굴을 감싸고 싶어진다.

그런데도 나는 간다. 아니, 기어이 간다.


왜냐고?


그 모든 민망함을 이겨내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

생각을 꺼버리고 싶어서.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도는 잔소리들—

그 모든 생각들이 뜨끈한 물에 잠기면,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진다.

잡음 많던 라디오 주파수가 딱 맞춰지듯,

복잡한 마음도 조용히 제 주파수를 찾아간다.


하지만 물이 빨리 식어버리면, 평온도 그만큼 짧게 끝나버린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만 남긴 채, 아쉽게 돌아서야 하는 기분.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온기를 오래도록 지켜주는 공간,

공공의 열기를 품은 그곳,

바로 목욕탕으로 가자고.


그리고 덤으로 따라오는 호사들이 있다.

작은 욕조에선 불가능한 자세도 탕에선 자유롭고,

우리 집엔 없는 다양한 사우나도 체험할 수 있다.

게다가 단돈 2천 원이면 얼음 동동 떠 있는 오미자 주스까지!

이쯤 되면, 나의 작은 욕실은 조용히 물러선다.


물론, 나만을 위한 욕실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 나누는 열기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정겨워진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웅웅 울리는 말소리,

안개같이 깔려있는 주변의 온기.

그 모든 것이 거슬리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데운다.

그리고 그냥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쉬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그리고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그 시간, 그 탕, 그 위치에서 마주칠 확률?

내가 복권 3등 되는 것보다 낮다.

(물론 2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욕심은 탕에서 씻고 나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을 연다.

한껏 움츠렸던 나를, 뽀송하게 펼치러 간다.

잘 다려진 옷처럼,

뜨끈한 공기 속에서 나도 천천히 잘 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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