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서린 날엔 아무 생각 없이

3. 계절을 잊고 싶지 않아서

by 백공란




목욕탕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김 서린 풍경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곳으로 향했던 어느 여름날의 길,

그날의 공기, 그 순간의 색감이 먼저 떠올랐다.


집에서 목욕탕까지 8분.

짧은 거리엔 작은 숲길이 놓여 있다.

정수리를 콕콕 찌르던 뙤약볕,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던 매미 소리,

하늘을 뒤덮은 초록의 물결.

여름이 쨍하게 속삭이던 그 풍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나는 단지 몸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절을 걷기 위해 목욕탕에 간다.


가을엔,

바스락, 바스락—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겨울엔,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앙상한 나뭇가지가 만들어낸 고운 선들을 따라 걷고 싶어서.


봄엔,

벚꽃잎 하나가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 순간,

그 마법 같은 재회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나는 사계절의 온기를 따라 걷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계절만의 풍경을 기억하기 위해, 생에 모든 계절을 만끽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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