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홍옥
올해는 늦도록 머문 더위덕에 홍옥을 좀 많이 기다렸다.
좀처럼 마트나 시장에서는 만나기가 어려운 홍옥이다.
언젠가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하니 사과농장 직배송이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바로 주문을 하고 먹기 시작한 지가 꽤 여러 해 되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홍옥을 주문한다.
올해는 좀 늦었지만.....
그 시절 나무 궤짝에 가득했던 사과
아파트 같은 층에 살던 내 친구 현이,
현이네 엄마와 우리 엄마는 아파트 절친이셨다.
시장에서 홍옥 한 궤짝을 사서 두 집이 서로 나누고 나면,
현이와 나는 어느새 손에 홍옥을 들고 아파트 복도에서 만났다.
깝질째 한입씩 사과를 베어 물며 별것도 아닌 것에도 깔깔거리며 신나서 놀던 생각이 난다.
홍옥은 늘 그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셨고, 현이 엄마는 전업주부셨다
일하시는 엄마대신 이것저것 잘 챙겨주셨고,
아직 우리 집에 전화가 없던 그 시절,
우리 집에 올 전화연락처는 현이네였다.
서로의 집을 자기 집처럼 오가며 지냈고,
같은 층에 살았던 나보다 2~3살 나이가 많던
307호 언니는 그런 우리 사이를 엄청 시기질투 했었다.
현이엄마는 꽤 미인이셨고, 키도 크셨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때
백화점 부띠크 매장에서 그 브랜드의 옷을 입고 모델 겸 판매일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도 가끔 그 매장에 들르셨고,
다녀오시면 늘 "현이엄마는 옷걸이가 좋아서 뭘 입고 있어도 잘 어울리더라 모델 같아
내가 입을만한 것은 도통 없어, 뭐라도 하나 사주고 싶은데..." 하셨었다.
우리 엄마는 워낙 체격이 적으시고 키도 작으셔서 기성복보다는
그 시절 많았던 의상실에서 맞춤옷을 많이 하셨었다.
홍옥과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
'베이지색 바바리코트'
추석빔으로 똑같은 옷을 두 분이서 함께 시장에서 사 오셨었다.
나란히 같은 옷을 입혀서 현이와 나 둘을 세워두고 보시면서
너무 큰 걸 샀다, 색감이 생각보다 어둡다는 둥 서로 한참을 얘기하시다가
'그래도 이쁘다. 너희 쌍둥이 같으다' 하시며 서로 웃으시던 그 순간이 선명하다.
조금 더운감이 있었지만, 우리 둘은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같은 옷을 입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었다.
그 시절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인듯하다.
홍옥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 시절이 그려진다.
그 시절, 그 아파트, 그때 그 계절과 사람들......
깨끗이 씻어 한알씩 뽀득뽀득 닦으면 백설공주의 빨간 사과가 된다.
한입 배어물면 쓰러지게 되는....
주르륵 과즙이 넘치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과 아삭함에
8월 말복 이후 밤기온이 내려가고 일교차가 커지며 과일의 숙기가 진행되는데, 올해는 열대야가 9월 중순까지 지속되어 뜨거운 날씨에 과육은 숙기가 되지만, 착색은 또 더디 되어 수확시기도 놓치고,
여러모로 올해 홍옥도 당황스럽고 힘들었을 거다.
올해는 맛은 덜하지만,
홍옥이라 나는 매일 한 알씩 추억과 함께 먹는다.
맛있다!
어김없이 가을이다.
홍옥과 함께 내 가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