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유명한 경주마 실버 브레이즈가 사라졌다. 그리고 사육사가 죽었다. 검시관 그레고리와 함께 어느 낯선 사람을 도둑으로 지목한 로스 대령은 홈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그날 밤 그 자리에 있던 개의 반응이 흥미롭군요.”
“그 개는 그 밤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바로 그 점이 흥미롭다는 겁니다.”
수사는 통상 알리바이 등 나타난 현상에 집중한다. 하지만 셜록 홈스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기초에 충실했다. 그는 이 사건에서 개가 짖지 않은 것에 주목했다. 면식범이었다. 결국, 경마에 걸린 돈 때문에 실버 브레이즈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관리인이 거꾸로 말 뒷발에 치여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통찰력과 추론을 통해 부재(不在)에서 단서를 찾은 사례였다.
라파엘전파(前派) 홀먼 헌트의 <깨어나는 양심>이다. 그림은 얼핏 단순하다.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남녀 한 쌍이다. 그런데 여인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수염을 기른 남성은 그 까닭을 몰라 짐짓 당황스러워한다. 무슨 일일까? 먼저 눈에 보이는 단서를 통해 상황을 분석해 보자.
여인은 유일하게 왼손 약지에만 반지를 끼지 않았다. 약지는 결혼반지를 끼는 손이다. 사내 옆 테이블 아래에는 고양이가 파닥거리는 새를 희롱한다. 피아노 보면대 위 악보가 결정적이다. 악보에 실린 노래는 토머스 무어의 'Oft in the Stilly Night'로, 돈 벌러 상경했다가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한 후 과거를 후회하는 시골 처녀의 회한이다. 바닥에 흩어진 악보 ‘눈물, 헛된 눈물’이 상황을 거듭 확인해 준다. 그렇다. 여자는 사내의 정부다.
그럼,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양심이 갑작스럽게 깨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해답은 여인의 뒷모습이 비치는 후경 거울에 있다. 그녀가 잠깐 고개를 돌려 활짝 열린 창문에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나무와 나무를 비추는 밝은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혹은 영적 부름)이 타락한 그녀의 내면을 흔든 것이다.
지금부터는 그림에 나타나지 않은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산업혁명 이후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1838~1901년)였다. 기술의 발달은 돈과 시간의 여유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가진 자의 몫이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졌고, 특히 농촌이 피폐해졌다.
통계에 따르면, 19세기 후반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도시에 살던 노동계급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식비로, 집세는 20~30퍼센트, 땔감 9퍼센트, 옷값 3~7퍼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여윳돈이 없었다. 노동자인 가장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일자리를 잃으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온 농촌의 가난한 여성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1844년, 급기야 창녀 한 명이 '자살의 명소'인 런던 워털루 브리지에서 템스강으로 투신했다. 이 사건은 당시 영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많은 예술인은 여성들이 창녀가 되고,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차가운 현실을 다루기 시작했다. 토마스 후드가 시 <한숨의 다리>를 썼고, 와츠가 <익사자 발견>을 그렸다.
와츠의 그림에 비해 헌트의 <깨어나는 양심>은 상대적으로 한가롭다. 구조적인 모순을 회피한 채 매춘을 개인적 양심 문제로 돌렸다. 피아노 위 액자 속 그림은 성경 속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로 해석한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군중을 향해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했다. 따라서 화가는 통상적 수준의 교훈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도덕적으로 매우 경직된 사회였다. 라파엘전파의 그림도 자연을 충실히 묘사하면서 윤리주의를 상징하는 암시로 가득했다. ‘도덕을 위한 예술’을 주장한 현자 존 러스킨의 청교도적 도덕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법이다.
한편 현대 미술에서는 급기야 물성(物性)이 일도 없는 작가의 '개념'이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로 등장했다. 1917년 뒤샹이 소변기의 위치만 바꾸어 놓고 <샘>이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예술에서 안다는 것이 점점 만만치 않아 졌다.
인간의 뇌는 다른 감각보다 시각을 가장 우선시한다.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파스퇴르가 현미경을 통해 세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많은 질환을 악마의 작용으로 여겼다. 고통은 현실인데 그 원인이 보이지 않으니 악마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일컬어 미신이라 한다.
한편, 눈에 안 보인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물리학이 텅 빈 곳으로 여겼던 공간에 가득 차 있는 유동체(전기장, 자기장)의 존재를 확인해 냈다. 이때 수학이 검증도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우주는 무려 95퍼센트가 정밀한 망원경으로도 관측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정체도 깜깜하다. 그래서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로 부른다. 따라서 거시세계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주의 언어' 수학이 필수적이다.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행하는 관측 자체가 입자에 영향을 미치기에 위치를 확인하려면, '확률'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수학만으론 부족하다. 관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추론을 통한 가설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영국의 재야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에게 화성 탐사선 바이킹 호에 탑재할 생명체 탐지장치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는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를 밝히는데 굳이 탐사선을 보낼 필요가 없다”라고 답했다. 더불어 화성은 ‘완전히 죽은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빛의 스펙트럼 분석하면, 대기의 화학적 조성 상태를 알 수 있다. 분광학이다.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대부분이었으며, 상태가 매우 안정적이었다. 산소는 녹색식물이 계속 보충해줘야 하는 매우 불안정한 기체다. 따라서 안정적이란 말은 산소가 없으며,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이래저래 세상사 모든 것을 보되, 꿰뚫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