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타협, 가축

by 노인영


2024년 12월, 한 달 일정으로 남미 여행을 했다. 칠레로 들어서기 전, 눈이 시원해지는 평원에 자리 잡은 아르헨티나 양 떼 농가를 방문했다. 농장주는 "카리브해로 가려던 증조부가 졸다가 이곳으로 온 김에 정착하게 되었다"라고 농담했다. 유쾌한 스코틀랜드인이었다.

그의 집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년에 걸쳐 양 2,000마리를 끌고 내려온 후 최대 4,000마리까지 불렸다. 그러나 건조하고 강한 바람으로 인해 초지가 줄어들자, 기르는 양의 숫자가 현저히 감소했다. 이제 일꾼을 줄이고, 식구와 양치기 개 보더 콜리만으로 가계를 꾸려간다.


개 한 마리가 주인이 부는 휘파람 소리를 구분, 양 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그 동작이 눈부시게 재빠르다. 일꾼 서너 명 몫을 너끈히 담당한다. 기특한 일이다. 개는 인간과 야생 늑대 사이 타협의 산물이다. 인간이 애정과 보호를 책임지고, 늑대는 헌신과 충성심을 다짐했다. 하지만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이 되면, 어쩔 수 없는 늑대의 본성이 꿈틀거린다. “아우~우~우” 하울링 한다. 그러나 이곳 양치기 개는 충성심에서 털끝만 한 흔들림도 없을 듯했다.





에드윈 헨리 랜시어, <늙은 양치기의 문상객(1837)>

늙은 양치기가 세상을 떠난 시골집 상가는 망자의 지인이 모두 떠나 썰렁하다. 그와 함께 일했던 개, 보더 콜리 홀로 남아 상가를 지킨다. 개는 죽은 양치기가 누워 있는 관에 머리를 기댄 채 꺼질 줄 모르는 슬픔에 잠겨 있다. 그간 망자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했듯이 이제 개는 양치기의 무덤을 찾아 동무해 주리라.

영국의 동물화가 에드윈 랜시어의 대표작 <늙은 양치기의 문상객>이다. 개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화가는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 간의 감정 교류를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동물에게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이입하여 극적인 이야기를 창출했다. 과학을 초월한 예술적 접근이다.


아직 지구상에 어슬렁거리는 야생 늑대는 모두 합쳐 약 20만 마리 정도이다. 하지만 가축화된 개는 4억 마리가 넘는다. 사자는 4만 마리인 데 비해 집고양이는 6억 마리다. 아프리카물소는 90만 마리지만, 1만 년 전 터키 동남쪽에서 길들였던 소는 15억 마리다.

1980년, 유럽에는 야생 조류가 20억 마리가 있었다. 하지만 2009년에는 16억 마리만 남았다. 같은 해 유럽 사람들은 닭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 19억 마리의 닭을 길렀다. 지금은 약 200억 마리나 된다. 이 지점에서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가 ≪빅 퀘스천≫을 던진다.


“가축은 과연 인간의 포로인가?”


현재 전 세계 대형동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인간 아니면 가축이다. 그중 몸무게가 45킬로그램이 넘는 포유류 가축은 13종이다. 양, 염소, 소, 돼지, 말, 두 종류의 낙타, 당나귀, 야마(라마), 순록, 물소, 야크, 발리 소 등. 모두 기원전 8,000년에서 기원전 6,000년 사이에 길들었다.

가축은 식물을 먹고, 빨리 자라며, 갇혀서도 번식할 수 있고, 도망치기 위해 자신이나 사육자를 해치지 않으며, 다루기 쉽도록 무리 짓는 공통점이 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성공한 종들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개입한 인위선택이다. 따라서 배신 역시 인간의 몫이었다. 가축에게 짐승(?) 이하의 삶을 강요하며, 편히 죽을 권리마저 박탈했다.


닭은 티라노사우루스의 단백질 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그리고 곡식을 고기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돼지만큼, 소보다는 5배 더 효율적이다. 역설적으로 이 점이 닭의 불행을 재촉했다.

닭은 가축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를 드러냈다. 전염병에 잘 걸리고, 서열을 정하기 위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운다. 그리고 병아리의 성별을 구별하기가 힘들어 대량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10만 년 전 먹이사슬 맨 위에 오른 인간은 끈질겼다. 닭에게 항생제를 먹이고, 뜨거운 인두로 부리를 지지면서 암탉의 날개가 수탉보다 더 짧은 종자를 개발했다.

하루 22시간씩 불을 밝혀 놓고 닭에게 먹이를 주고, 부화된 지 47일이 되면 내다 팔았다. 달걀도 매일 한 개씩 낳도록 길들였다.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 게다가 달걀은 어미를 대신한 기계로 부화하며 매일 아침 인간의 밥상에 올렸다. 이 순간,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소행성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두려워해야 한다.”


고기 1킬로그램의 칼로리와 단백질 함량을 채우려면, 가축에 최소한 세 배, 평균적으로 일곱 배 많은 사료를 먹여야 한다. 반면 소의 자연 식단인 풀은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소에게 곡물 사료를 먹이는데 발육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심각한 폐해가 뒤따랐다.

전 세계 농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에서 사료 재배와 벌목, 가축의 배설물을 처리해야 했다. 항생제를 사용해 소화기의 민감한 반응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개체 수가 늘어난 소의 방귀는 지구 전체 메탄가스 배출량의 약 25퍼센트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가축의 역습도 시작되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소동이 전조 현상이었다. 오염된 동물성 사료를 섭취한 소가 변형 프라이온(prion) 단백질을 만드는데, 평균 3~5년 이상 잠복기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은 인간의 기억력 저하, 치매, 무의식적 운동 등 신경 퇴행을 가져온다. 게다가 치료법이 없다는 점이 두려움을 키웠다.

구제역, 아프리카돼지 열병처럼 가축을 숙주로 한 바이러스 감염이 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조류 인플루엔자(AI)는 닭, 오리 등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고병원성일 경우,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방역 조치 수준에서 눈을 질끈 감고 “달걀을 먹어도 괜찮으려나?” 정도의 고민에 그친다.


인간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에 맞게 뜯어고치면서 살아왔다. 가축은 그 노력의 결실이며, 따라서 소유권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일방적인 우월감이다. 각각의 생명체는 인간 못지않은 장구한 역사와 고유의 존재 가치를 지녔다. 더군다나 현존하는 종의 50퍼센트 이상이 상호 의존적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 의존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금, 고기를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지금부터라도 가축과 맺은 양해각서(MOU), 즉 공진화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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