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공룡이 대장일 때가 살기 좋았다

by 노인영

1505년,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인도양 아프리카 동쪽 모리셔스섬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곳엔 몸무게가 23킬로그램 정도 되는 새가 서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새지, 섬에 천적이 없어 날아다니는 능력을 상실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매우 좋은 사냥감이라며 ‘어리석다’라는 뜻의 ‘도도새’라 이름 붙였다. 1681년, 도도새는 인간 및 인간과 함께 섬으로 들어온 원숭이, 쥐로 인해 결국 절멸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도새가 멸종하자, 섬의 희귀종 나무가 번식을 멈췄다. 도도새의 소화기관을 통해 나무의 씨앗이 옮겨졌으나 새의 멸종이 나무의 번식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부랴부랴 비슷한 식도 구조를 가진 칠면조를 풀어놓았고, 다행히 세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엔 그 나무를 ‘도도 나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럼, 이 나무는 '어리석은' 나무일까? 어쨌든 이 이야기는 생명체가 그물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문 사진: ≪진화론≫을 쓴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를 향할 때 지났던 비글해협에 세운 '지구 남단 마지막 등대')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자 사냥(1854)>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사자 사냥>을 그렸다. 그는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의 이론에서 큰 영향을 받아 색채 변화에 연구가 깊었다.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가 이 그림을 보고 ‘진정한 색의 폭발’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림은 제목과 반대로 사자 암수 한 쌍이 사냥꾼과 그들이 탔던 말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이다.

오딜롱 르동의 모사본

1870년 12월 7일, 보르도 미술관에 큰 불이 났고, 전시 작품 16점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때 <사자 사냥>도 위쪽 3분의 1이 불에 탔다. 다행히 들라크루아에게 그림을 배웠던 르동이 정교하게 모사한 복사본이 있어 간접적으로 원작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불에 탄 윗부분에는 말을 타고 칼과 창으로 사자를 공격하는 두 명의 사냥꾼이 존재했다. 그중 백마를 탄 남자를 꼭짓점으로, 원본은 정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에서 차용한 안정적인 구도다. 비로소 '사자 사냥'이란 주제가 선명해졌다. 먹이사슬 맨 위에 선 인류의 압도적인 힘이 드러난다.


138억 년 전 빅뱅이 있었고 우주가 탄생, 팽창했다. 지구는 46억 년 전에 등장했고, 지구 생명체의 역사는 38억 년 전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1억 년이란 백 년을 사는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 개념이다. 좀 더 쉽게 실감할 수 있도록 지구의 역사 46억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하여 설명해 보자.

새벽 2시 30분쯤 단세포 원핵(原核) 생물이 출현, 그 상태로 하루의 3분지 2를 지냈다. 이후 바다 식물(광합성 조류)이 저녁 4시에서 7시 사이, 다세포 생물은 저녁 10시 전후에 등장했다. 동물과 식물이 육지로 올라온 시각이 이와 엇비슷하다. 그리고 공룡은 밤 10시 53분에 나타나서 밤 11시 58분쯤 멸종했다.

인간의 조상과 유인원의 분기점은 밤 11시 53분,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자정 20초 전인 23시 59분 40초경 등장했다. 이후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건설된 시각은 자정에서 불과 몇 초 전이다. 인류가 뽐내는 오늘날의 문명은 그야말로 찰나에 이루어졌다.

한편 이런 '생명의 나무'를 통해 모든 생명체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던 시기보다 훨씬 짧은 기간 내 멸종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것도 외부 원인이 아니라 내부, 즉 인간 스스로 저지른 결과로써 절멸이다. '슬기로운 인간'이란 뜻이 새삼 무색하다.


인간이 신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야기한 6차 대멸종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멸종'이란 1년에 약 1개 종이 사라지는 속도를 말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2025년 자료에 의하면, 전체 약 172,620종 중 28퍼센트인 48,646종이 멸종 위험군에 포함되었다.

포유류 27퍼센트, 조류 12퍼센트, 파충류 21퍼센트, 새롭게 편입된 나무 38퍼센트가 위기에 처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양서류의 절멸이다. 지구 온난화, 서식지 파괴 등으로 전체 6,000여 종의 약 41퍼센트가 적색 목록에 포함되었다.

극단적인 기후-생태 모델에서는 2100년까지 생물 종의 3분지 2에 달하는 절멸을 예상한다. 가장 처참했던 2억 5,000만 년 전 페름기-트라이아스기에 있었던 3차 멸종과 유사하다. 당시 해양식물의 96퍼센트와 척추동물 70퍼센트를 포함, 지상 동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리어 호수에 모기와 비슷한 각다귀가 살았다. 그러나 각다귀는 모기와 달리 피를 빨아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충이 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산다. 한마디로 인간과 동물에 무해하다. 하지만 인간은 모기를 닮은 것이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1949년부터 1957년까지 살충제 D.D.D를 뿌려 박멸했다.

그러자 농병아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살충제가 호수를 오염시켰고, 플랑크톤을 먹은 농병아리의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화학물질은 파급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오랜 시간, 심지어 대를 지나 피해 규모가 심각해진 뒤에야 인식할 수도 있다. 환경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의 문제다. 우린 후손으로부터 지구를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옥시 사태’가 벌어졌다. 레이철 카슨 여사가 ≪침묵의 봄≫에서 화학제의 위험을 경고한 지 50년이 지났을 때였다. 임신부 5명이 급성 폐질환으로 사망하면서 사태가 시작되었다. 정부의 1, 2차 피해자 조사 결과, 사망자가 103명이고 검찰에 고발된 가습기 제조·판매 19개 업체 전·현직 임원 수가 256명이었다. 고엽제 피해를 이미 경험한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인류의 폭력적인 환경파괴로 인한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人類世)'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 지질학 연합 산하 '인류세 실무단' 학자들은 공룡이 뼈와 발톱을 남기고 멸종했듯 “인간은 플라스틱 페트병과 알루미늄 깡통을 남기고 사라질지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의 저자 피터 싱어는 멸종 위기를 이유로 고래잡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고래가 큰 두뇌를 지닌 사회적 포유류로, 삶을 즐기고 고통을 느낄 줄 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래를 잡아야 할 절박성이 존재하지 않고, 고래로부터 얻는 모든 것은 잔인한 살육 없이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는 고래잡이를 비윤리적인 산업이라고 못 박았다.


영국 정부는 문어, 오징어 등 두족류와 바닷가재, 게, 새우 등 십각목 갑각류를 지각이 있는 존재로 동물복지법에 명시한 바 있다. 그리고 2025년 12월 23일(현지 시각) 스위스, 노르웨이, 뉴질랜드에 이어 바닷가재 등을 "산 채로 삶는 방식을 금지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문화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산 낙지를 먹거나 갑각류를 산 채로 뜨거운 물에 끓이는 모습을 TV에 노출 안 했으면 좋겠다. 제2의 브리지트 바르도가 등장할 쟁점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앞서 제시한 들라크루아의 <사자 사냥>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이래저래 지금 동물들은 저희끼리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지구는 공룡이 대장일 때가 훨씬 살기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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