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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pr 15. 2024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농가 주변 풍경

국경을 넘기 전, 눈이 시원해지는 평원에 자리 잡은 아르헨티나 양 떼 농가 한 곳을 들렀다. 농장주는 "카리브해로 가려던 증조부가 졸다가 이곳으로 와 정착하게 되었다"라고 농을 한다. 유쾌한 스코틀랜드인이다. 그의 증조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년에 걸쳐 양 2,000마리를 끌고 내려왔고, 이후 최대 4,000마리까지 불렸다. 

그러나 건조하고 강한 바람으로 인해 초지 조성이 어려워지자 기르는 양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이제는 일꾼을 줄이고 식구들과 양치기 개 보더 콜리와 함께 가계를 이어간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농장 투어도 재정적 사정이 고려되어 마련된 듯하다.


농장주의 휘파람 소리에 오토바이 위에 올라타고, 양떼 몰이를 마친 후 엎드려 경계하는 보더 콜리

예상치 못했던 좋은 볼거리였다. 주인이 부는 휘파람 소리를 구분하여 개 한 마리가 양 떼를 이리 몰고 저리 몰고 다니면서 일꾼 서너 명의 몫을 한다.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사실 개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과 야생 늑대 간 타협의 산물이다. 인간이 애정과 보호를 책임지고, 늑대는 헌신과 충성심을 서로 다짐했다. 하지만 어슴푸레 저녁 무렵이 되면, 개의 내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늑대의 본성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오늘 본 양치기 개 '보더 콜리'는 해가 저물어도 충성심에서 털끝만 한 흔들림이 없을 듯하다. 

영국의 동물화가 에드윈 랜시어의 대표 작품 <늙은 양치기의 상주(喪主)>가 떠오른다. 늙은 양치기가 죽고, 상가에서 망자의 친구들도 모두 떠난 뒤 그 빈자리를 지켰던 유일한 상주는 바로 양치기가 기르던 개였다. 그 개가 스코틀랜드산 보더 콜리라고도 하고, 뉴펀들랜드 종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인간의 가족으로써 완벽하게 정체성을 확립한 보더 콜리의 모습을 오늘 확인했다. 

 

털이 완전히 벗겨진 양은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다(왼편)

이어 농장주는 사육장에서 메리노 양의 털 깎는 모습을 시연했다. 양치기의 숙련도는 양을 상처 안 나게 빨리 털을 깎는 것으로 가늠한다. 그는 싫다는 놈을 가랑이 사이에 꼼짝 못 하게 붙들어 두고 전기 털깎기로 순식간에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렸다. 대관령 양 떼 목장에서 바라본 감상적인 풍경이 아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대평원에서 치열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인지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뒤 내 가슴엔 숙연함이 엄습했다.

농장주의 가옥은 단출했다. 우리 일행은 그곳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남미 초원 지대의 카우보이 가우초(Gaucho)가 먹던 숯불 통구이 '아사도(asado)' 형식으로 만든 양고기와 '비노(와인)'를 곁들여 가정식 식사를 했다. 안주인이 내온 음식은 조촐했다. 하지만 정갈하고 정말 맛있었다. 정성이 반찬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화려한 식당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아르헨티나 농가의 삶과 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르헨티나(왼편)와 칠레 출입국사무소

식사 후 다시 버스로 안데스산맥 동편 국경으로 향했다. 산맥은 길이 약 7,000km, 평균 고도가 4,000m이다.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서면서 산맥을 기준점으로 칠레 땅이 서쪽에 국한되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졌다. "그럼, 어떻게 버스로 겹겹이 쌓인 산을 넘어 산티아고로 가지?" 나폴레옹이 넘었던 알프스 산맥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닮은 길이 이곳에도 있을지 자뭇 궁금해졌다. 버스는 높지 않은 산길을 계속 달렸다.


공원 내 숙소에서 바라본 파이네 그란데

입국 심사 후 1시간 30분 정도 지나 칠레의 ‘창백하고 파란 탑'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1,200만 년 전 화강암으로 형성된 3개의 파이네 산괴(山塊)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공원 내 숙소에서는 3,050m 파이네 그란데만 보인다. 


공원 내 숙소,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행복이 별 것이냐?"라고 질문해본다

주변이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마치 스위스 어느 곳에 온 것 같다. 산책 나온 독일인 노부부가 동양인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곳의 평화로움이 좋아 다시 찾았다고 전해준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서 한 사흘 묵고 싶다. 식당에서 가지고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 여유와 충만감, 그 옛날 어느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았다.


위에서 바라본 숙소 주변 풍경

그레이 빙하, 에메랄드빛 페오에 호수, 블루 레이크, 사르미엔토 호수 등으로 구성된 공원을 제대로 트레킹하려면 대략 9박 10일 정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1박 2일 머무는 우리는 쿠에르노스 전망대와 라구나 아줄(Laguna Azul) 호수를 가볍게 트레킹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운 일이다.


이름 불러주자 비로소 내게 다가온 붉은색 몸짓, '불꽃'
무지개 뜬 살토그란데 폭포 / 가까이에서 본 파이네 그란데

쿠에르노스 전망대로 가는 트레일 양편에 일정하게 배열한 나무와 돌은 길의 경계를 명징하게 구분한다. 이것은 무언의 경고다. 실제 트레일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현지 가이드가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통제한다. 2011년 큰 화재를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 청년이 트레일을 벗어나 캠프파이어를 하던 중 불이 붙어 무려 3개월간 번졌다고 한다. 지금도 산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사건 이후 불을 피우다 적발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및 미화 4,000달러의 과태료를 내게 되며, 불을 낼 경우에는 이보다 더 세게 5년 이하 징역 및 1만 6,000달러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인도가 뚜렷한 트레일

경사가 급하지 않은 길은 바스러진 조그만 돌로 이루어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사각 들려오는 소리가 좋았다. 지난번 세로토레 트레일 코스에 비해 거리도 짧고, 난이도가 절반도 안 되어 걷는 내내 평안했다. 주변 풍광에 취해 저절로 발길을 옮기다 보니 눈 깜빡할 사이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 수목 중 유독 독특한 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푹신푹신한 방석 같다.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도 편안할 듯싶다. 


고사목과 집단 서식하는 '장모방석'

그러나 손으로 만져보면 몹시 따갑다.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다. 현지에서 부르는 나무 이름이 재미있다. ‘장모방석’이란다. 고부 갈등이 심한 대한민국에서는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는데, 이곳은 장모-사위 간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가 보다. 하긴 요즈음 대한민국에서도 엄마가 딸의 이혼을 부추긴다고 하니, 수입하여 울타리 나무로 심어도 뿌리가 잘 내릴 듯싶다.


왼편 빨간색 건물이 식당이다. 아줄 호수에서 비로소 보이는 토레스 델 파이네 세 봉우리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다친 사람 없이 트레킹을 잘 마쳤다. 점심은 경치가 아름답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해결했다. 몇 분하고 작은 로컬 맥주를 마셨는데, 의외로 신선하고 입맛에도 맞았다. 계산은 딸이 미국 회사에 취업하면서 만들어준 신용카드로 지불했다. 

5년여 만에 처음 사용한 카드라 기분이 더욱 유쾌해졌다. 그간 카드 쓸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딸내미가 힘들여 번 돈"이라며 압수한 채 내놓지 않던 카드다. 묵직하고 촉감이 좋은 효녀 카드는 의도치 않게 산티아고에서 한 번 더 사용하게 된다.


색채로 본 아줄 호수

휴식 같은 점심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아줄 호수에 도착했다. 비로소 2,850m 토레스 델 파이네 세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는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산과 호수, 그리고 색색의 풀이 어울려 파랑과 노랑, 청록과 빨강으로 훌륭한 보색 대비를 이룬다. 우리가 타고 온 알록달록한 버스도 한몫 거들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지에서 왜 지구상의 10대 낙원으로 선정했는지 알 것 같다.


ID '영숙 see' / 가이드 인솔 하에 멀리 버스를 향해 돌아가는 중

짬짬이 그림일기를 쓰는 ‘영숙see’를 발견했다. 그녀에게 인사차 물었다. “현장에서 스케치하고 버스에서 물감 칠하고 바쁘겠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에 삶의 지혜가 담겼다.


"괜찮아요. 잘 그리려고만 하지 않으면..."


조그만 어촌 마을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면서 처음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우수아이아에서 행로를 북쪽으로 잡았기에 관성에 의해 우리 행선지가 산티아고를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버스로 험준한 안데스산맥을 경유하여 서편으로 넘어갈지 내내 궁금해한 것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숙소 부근의 새벽 항만

공간 지각 능력이 부족한 차제, 글로만 행로를 확인했기에 발생한 착각이다. 지도를 보면, 대번에 알 일이었다. 우린 북쪽이 아니라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칼라파테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 그리고 푼타 아래나스로. 그리고 그곳에서 비행기로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인간의 인식은 한번 오류에 빠지면, 여간해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이런 인식의 오류는 살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면 다행한 일이지만, 자칫 보편성에서 벗어나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다. 늘 경계해야 한다. 자기 확신과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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